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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싸움 말리다 피의자된다

여여니(여연) 2005. 6. 7. 10:12
"길거리 싸움 말리면 피의자 된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여자 도우려다 양쪽 모두 '입건'
예전에 한 지인으로부터 몹시 다급한 전화를 받았는데 사연인 즉, 한 동네에 같이 사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젊은 사람이 여자를 붙들고 심하게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고 나이든 입장에서 그러지 말라고 훈계를 하다가 시비가 되어 결국은 지구대를 거쳐 경찰서에서 입건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경찰서에 입건된 사람이나 나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 모두 나이 사십이 넘었지만 처음으로 경찰서에 들어갔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후일 필자를 찾아와서는 경찰서에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싸움의 발단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피해 정도가 심하지 않아 검찰의 약식기소로 벌금형으로 끝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렇게 밖에 해결될 수 없는 것이냐며 재차 문의한다.

자초지종을 다시 들어보니 대로상에서 젊은 남자가 여자를 심하게 때리는 것을 보고 술김에 순간적으로 정의감 같은 것이 발동하여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자식뻘 같은 젊은 남자가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욕설을 하며 멱살을 잡고 흔들기에 뺨을 두어 차례 때렸다는 것이다. 정의감으로 시작한 일이 결국 전과자가 되게 되었다며 앞으로는 그런 상황을 봐도 모른체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냐며 하소연을 한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연후에 뺨을 때린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한편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른이 길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는 젊은 사람을 상대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 훈계 차원에서 관여한 결과가 전과자가 되게 되었다는 점, 시비가 생긴 과정은 무시되고 그 결과만 놓고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점 등 불합리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질서와 잘못된 광경을 보고도 그냥 모른 체 지나쳐야 하는 것이 현실인가 하는 것과 자신이 한 소행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고 맞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법으로 해결하려는 젊은이들의 왜곡된 법 상식에 대해서도 심히 우려가 되었다.

"약자가 당하는 행패 그냥 지나쳐야 할까?"



요즘은 10-20대가 더 무섭다는 얘기도 있지만 자식 가진 부모 입장에서 딸 같은 아가씨가 길거리에서 무차별하게 행패를 당해도 못 본체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아니면 전과자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다소 감수하고라도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길로 계도 내지는 선도를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도대체 정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민원인들 역시 불혹을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몹시 혼돈스럽다고 했다.

경찰의 조사결과 피의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일치한다면 그 과정도 면밀히 살펴 민주시민의 건전한 상식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판단이 선다면 과감히 훈방할 수 있는 그런 체제로 바꾸는 것만이 국민의 안전과 사회질서를 보장할 수 있고 참다운 민주사회가 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일선에서 폭력사건을 많이 접하는 경찰관의 경우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자초지종을 듣지만 일단 서로가 폭력을 행사했다면 현행 법체제하에서는 정당방위나 정당행위로써의 훈계 등은 고려될 여지가 적고, 양쪽 모두 피의자로 처리하는 소위 "쌍피사건"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건의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일선 경찰관에게는 이렇게 일상적인 사건수사에 대해서조차 권한이 없다보니 일단은 사건화하여 검찰에 보내 그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싸움의 과정에서 애꿎은 사람이 가해자로 둔갑하는 일명 "쌍피(양쪽 모두 피의자)"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관행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은 물론이고 정의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정넷포터 김용운(
yongun7@naver.com)

 

 

<김용운님>은 인천 동부경찰서 주안역지구대 도화1치안센터에서 민원담당관으로 근무하다 현재는 인천경찰청 생활안전계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평소 꿈이었던 경찰의 길을 걷기 위해 1989년 늦깎이로 경찰시험에 합격했다.

*나온데 : 2005.06.04 국정브리핑 넷포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