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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닷가에서 -안도현

여여니(여연) 2005. 12. 2. 09:50

 

가을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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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 만씩 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정양 시인의 <토막말>의 한 부분입니다.


정순이라는 이름, 참 순정하게 귀에 와 닿지요?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으면 바닷가 모래밭에다 이렇게 마음을 쏟아놓게 되었을까요. 띄어쓰기도 없이, 맞춤법도 없이, 체면도 없이 말이지요. 그리움이란 이렇듯 늘 대책 없는 것인가 봅니다. 하지만 그 대책 없음 앞에서 당신도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당신도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대문짝 만하게 땅바닥에다 써놓고 그 끝에다 ‘씨펄’ 한 마디 덧붙이고 싶지 않습니까?

*나온데 : 2005.12.2 안도현의 아침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