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니(여연)
2005. 7. 22. 17:41
열흘 붉은 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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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다 필 수도 없겠지만
한 번에 다 붉을 수도 없겠지 피고 지는 것이 어느 날, 문득 득음의 경지에 이른 물방울 속의 먼지처럼
보이다가도 안 보이지 한 번 붉은 잎들 두 번 붉지 않을 꽃들 너희들은 어찌하여 바라보는 눈의 깊이와
받아들이는 마음의 넓이도 없이 다만, 피었으므로 지는가 제 무늬 고운 줄 모르고 제 빛깔 고유한 줄 모르면
차라리 피지나 말지 차라리 붉지나 말지 어쩌자고 깊어가는 먼지의 심연처럼 푸른 상처만 어루만지나
어쩌자고 뒤돌아볼 힘도 없이 그 먼지의 무늬만 세느냐
이산하 시인의 시 「열흘 붉은 꽃 없다」입니다.
찌는 여름에 피는 꽃은 대체로 붉습니다. 요즘 한창인 능소화가 그렇고 석류꽃이 그렇습니다. 여름꽃이 처음부터 그렇게 붉었을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여름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꽃이 붉어진 게 아니었을까요? 시인은 열정적인 빛깔로 피어났다가 금세 지고 마는 붉은 꽃을 보며 서운한 게
있는 모양입니다. ‘차라리‘라는 말이 그런 원망의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꽃이란 세상하고 싸우러 나섰다가 세상하고 쉽게 타협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시인이 간절히 바라는 눈의 깊이와 마음의 넓이를 가진 꽃은 언제 피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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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데 : 2005.7.22. 안도현의 아침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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