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수상자들

[자료] 황현의 매천야록과 절명시

여여니(여연) 2012. 4. 19. 12:49

 

황현선생의 매천야록과 절명시 

 

  오늘(2003. 3. 29) 박약회(博約會)서울지회의 정기총회에서 김용직(金容稷)교수의 학술강연 중에 매천선생의 절명시(絶命詩) 한 수가 소개되었기에 선생의 고매한 순국정신을 숭모하면서 잠시 선생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본다.

 

  매천 황현(梅泉 黃玹)선생은 철종 6년(1855)에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고, 세종 때의 명재상 황희(黃喜)정승과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사수하다가 전사 한 황진(黃進)장군의 후손이다. 구 한말, 절조 있는 삶과 죽음으로 일생을 마친 우국지사이자, 투철한 비판의식과 역사의식을 보인 역사가이셨다.

 

  부친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여 고종 25년에 생원회시(生員會試)에 나가 장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갈 뜻이 없어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 명성황후시해사건, 아관파천 등을 거처 드디어는 소위「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 되는 것을 보면서 그대로 글만 읽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어지러운 세상에 몸 담고 사는 한, 직접 보고 들은 사실들을 후세에 바로 알려서 경계토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야록(野錄)의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 바로 저 유명한 <매천야록(梅泉野錄)>이다. 고종이 즉위한 1864년부터 대한제국이 패망한 1910년까지 47년 간의 한말비사를 낱낱이 기록한 6권 7책으로 된 최근세의 방대한 사료이다.

 

  1910년 8월 22일 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합병되었다는 소식을 한 달 후에야 전해 들은 선생은 비분강개함을 금치 못하여 다음과 같은 유서와 함께 절명시를 남긴 후 다량의 아편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향년 56세였다.

 

                유        서 

  "이씨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이씨 사직을 위해 죽어야할 명분은 없다. 다만 500년간 선비를 길렀던 나라에 목숨을 받친 선비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스스로 떳떳한 양심과 평소에 독서한 바를 저버리지 않으려면 죽음을 택하는 편이 옳다. 너희들은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                          

                 

                절    명    시  

     亂離滾到白頭年    난리 속에 살다 보니 백발이 성성하구나

     幾合捐生却未然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今日眞成無可奈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되고보니

     煇煇風燭照蒼天    가물거리는 촛불이 푸른 하늘을 비치도다.

 

     妖氣掩예帝星移    요망한 기운에 가려 임금자리 옮겨지더니

     九闕침침晝漏遲    구중궁궐 침침하여 해만 길구나

     詔勅從今無復有    이제부터는 조칙이 다시 없을 것이니 

     琳琅一紙淚千絲    옥같이 아름다웠던 조서에 천 가닥 눈물이 흐른다.

     *일제의 강압으로 순종에게 양위되었음과 그 순종이 내렸던 소위 讓國詔書를 슬퍼함

 

     鳥獸哀鳴海岳嚬    새와 짐승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린다.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내 나라는 이제 망하고 말았구나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을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글하는 선비로서 세상 살기 참으로 어렵도다.

 

     曾無支厦半椽功    일찍이 나라 위해 한 일이 조금도 없는 내가

     只是成仁不是忠    다만 살신성인할 뿐이니 이것을 어찌 충이라 하겠는가

     止竟僅能追尹殺    겨우 송나라의 윤곡처럼 자결할 뿐이니

     當時愧不섭陳東    당시 진동처럼 적에게 항거하지 못했음이 부끄럽도다.

     *중국 宋末 元의 침입시 陳東은 저항하고 尹穀은 자결하였음

       

   선생은 이보다 앞서 1905년에 소위 을사보호조약이 을사오적(乙巳五賊)으로 일컬어지는 매국노들에 의하여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면서 지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애절한 시도 전한다.

 

     洌水歎聲白岳嚬    한강수가 슬퍼하고 북악산이 시름하거늘             

     紅塵依舊簇簪紳    세도집 양반네들 아직도 티끌 속에 묻혔구나           

     請看歷代姦臣傳    역대 간신들의 전기를 읽어보라                     

     賣國元無死國人    나라나 팔아먹지, 어느 누가 나라 위해 죽었던가.     

 

  이렇게 살다가 순국하신 절의지사 매천 황현선생에 대하여 호남의 유생들은 1945년 광복을 맞으면서 선생의 묘소에 모여 봉고(奉告)의 제를 올임으로서 선생의 영을 위로했으며, 정부에서도 1962년에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다. 필자가 몇 해 전에 나의 큰 아들 윤(潤)과 함께 찾았을 적에도 선생의 고향 구례에는 그의 생가와 그를 기리는 사당 매천사(梅泉祠)가 조촐한 유물전시관과 함께 잘 보존되어 있었다.

 

   2003. 3. 30

 

*나온데:   http://pwj32.com.ne.kr/a/a_1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