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날 기쁜 날 비켜라, 저리 비켜라 마른 논에 물 들어간다 뒷짐 지고 들어간다 휘파람 불며 들어간다 목말랐던 논바닥이 두 팔을 맘껏 벌리고는 어서어서 오라고, 아무도 막지 말라고, 물을 껴안아 흠뻑 마신다 구름도 덩달아 좋아서 논물 위에 첨벙첨벙, 삽 들고 선 아버지도 좋아서 논둑에서 어슬렁어슬렁,.. 유머편지명시명언 2007.06.22
봄 봄 제비떼가 날아오면 봄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봄은 남쪽나라에서 온다고 철없이 노래 부르는 사람은 때가 되면 봄은 저절로 온다고 창가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이 들판에 나오너라 여기 사는 흙 묻은 손들을 보아라 영차 어기영차 끝끝내 놓치지 않고 움켜쥔 일하는 손들이 끌어당기는 봄을 .. 국제각국도시 2007.04.11
살구꽃 살구꽃 * 해마다 4월이면 쌀 떨어진 집부터 살구꽃이 피었다 살구꽃은 간지럽게 한 송이씩 차례대로 피는 것이 아니라 튀밥처럼, 겨우내 살구나무 몸통을 오르내리며 뜨겁게 제 몸을 달군 것들이 동시에 펑, 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살구꽃은 검은 눈망울을 단 아이들이 맨발로 흙밭을 뒹구는 한낮.. 유머편지명시명언 2006.05.11
아, 오월 -안도현 아, 오월 파란불이 켜졌다 꽃무늬 실크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끼고 횡단보도 흑백 건반 탕탕 퉁기며 오월이 종종걸음으로 건너오면 아, 천지사방 출렁이는 금빛 노래 초록 물결 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 또 다른 고향 강변에 잉어가 뛴다 김영무 시인의 시다. 초록의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의 발.. 유머편지명시명언 2006.05.03
짐승과 나무는 한 어머니 자식 짐승과 나무는 한 어머니의 자식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가무잡잡한 피부 빛깔을 가진 인디언은 거의 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당이거나 별볼일 없는 조연자의 역할을 맡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백인 우월주의의 한 양상이다. 설혹 영화 속에서 인디언이 주인공으로 설정이 된다고 해도 대.. 유머편지명시명언 2006.03.14
간격 -안도현 간 격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 유머편지명시명언 2006.02.17
감동할 줄 아는 사람 -안도현 감동할 줄 아는 사람 제가 아는 시인 한 사람은 말 첫머리에 꼭 감탄사를 붙이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 시인을 처음 만나는 사람은 감탄의 횟수가 너무나 잦은 그이의 말버릇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지요. 남들이 그저 덤덤하게 여기는 일조차도 그이는 매우 감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 유머편지명시명언 2005.12.23
가을 바닷가에서 -안도현 가을 바닷가에서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 만씩 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 카테고리 없음 2005.12.02
사모곡 -안도현 사모곡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감태준 시인의 <사모곡>입니다. 짧은 소품이지만 가슴에 닿는 울림이 적지 않습니다. 모든 어머니는 모든 아들과 딸에게 절실한 존재입니다. 하물며 세상을 뜬 .. 유머편지명시명언 2005.11.21
왕겨-안도현 왕 겨 나 같은 것이야 사랑방 군불로 지펴져도 좋아요. 미끄러운 골목길에 뿌려져 밟히고 밟히다가 그나마 흙 속에 파묻혀도 좋아요. 쇠죽솥 펄펄 끓는 물 속에서 콩깍지에게 구박을 받아도 좋아요. 내 속에서 빠진 한 톨의 쌀 그의 이름이 욕되지 않는다면 까짓 나 같은 것이야 하다못해 이제는 소나 .. 유머편지명시명언 200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