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화재로드를 가다 2
변강쇠, 실상사 천년 세월을 거닐다
지난 5월 13일 지리산 둘레길 2차 구간 140㎞가 추가로 열려서 기존 71㎞ 구간을 합해 총 211㎞의 길이 완성되었습니다. 둘레길은 이제 5개 구간에서 16개 구간으로 늘어납니다. 지리산 둘레길은 3개도, 5개 시·군(전북 남원시, 경남 하동·산청·함양군, 전남 구례군) 16개 읍·면 100여개 마을을 잇는 800리(300여㎞) 규모의 국내 첫 장거리 도보 여행길입니다.
<지리산 둘레길 개통구간(5월14일자 경향신문)>
지난 번 이성계 이야기에 이어 변강쇠와 실상사 이야기를 엮어보려고 합니다. 둘레길 중 2008년 4월 시범구간으로 개통되었던 전북 남원 매동에서 경남 함양 금계구간에는 변강쇠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원은 춘향가, 흥부가로 대표되는 판소리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 일원은 변강쇠가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유랑민들의 비극적 생활상을 희극적으로 형상화한 「변강쇠가」는 「변강쇠타령」이나 「가루지기타령」, 「송장가」, 「횡부가(橫負歌)」로도 불립니다.
「변강쇠가」는 원래 조선 후기 판소리 열두 마당 중의 한 곡으로 신재효(申在孝)에 의해 판소리 사설로 정리 되었으며 조선 말기의 명창 송흥록이 잘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평안도의 옹녀와 삼남(三南)의 변강쇠가 청석골에서 서로 만나 지리산으로 와서 살게 되었는데, 그 곳이 지금의 남원시 산내면 백장계곡입니다. 어느 날 강쇠가 땔감으로 함양 벽송사에 있는 장승을 베어다 때어 장승들을 뽑아 땔감으로 사용하고 장승의 저주를 받아 동티로 죽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쌈지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변강쇠가의 무대 백장계곡>
많은 사람들이 변강쇠 타령을 음탕한 남녀의 성적 이야기쯤으로 생각하지만 19세기 경제적 분화 과정에서 발생한 유민층이 농촌 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집단에 의해 패배해간 사회적 현실이 잘 반영되어 있고 그 당시 하층민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판소리입니다.
지리산 둘레길 3구간 남원 인월~함양 금계 구간의 매동마을로 가는 국도변에 변강쇠가 살았다는 백장계곡이 있습니다.
변강쇠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 주변 문화재들을 찾으며 걸어보았습니다. 변강쇠의 집 근처에는 백장암이 있습니다. 백장암은 실상사에 딸린 부속암자로 실상사가 정유재란 때 전소되면서 숙종 시기까지 스님들이 기거하던 절입니다.
백장암에는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삼층 석탑이 있습니다. 백장암 삼층석탑은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이 나타납니다. 탑신의 1층에는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을,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새겼고.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습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고 있어,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석탑 중 하나입니다.
<국보 제10호 남원 실상사 백장암 석등과 보물 제40호 남원 실상사 백장암 석등>
백장암에는 삼층석탑 이외에도 보물 제40호 남원 실상사 백장암 석등, 보물 제420호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 백장암보살좌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1호 백장암소장범종 등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백장암에서 길을 나서 매동마을 쪽으로 오면 람천가에서 퇴수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5호 퇴수정(退修亭)은 1870년 가선대부 공조참판을 지낸 박치기(朴致箕)가 여생을 즐기기 위하여 지은 정자입니다. 정자 뒤로는 병풍처럼 가파른 산이 둘러져 있고 정자 앞으로는 큰 시냇물이 흐르며 주변에는 웅장한 나무들이 그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받침부에 사각형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워 이층 건물을 지었으며, 그 옆에는 후손들이 세운 사당이 관선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5호 퇴수정을 찾아 아름다운을 극찬하던 김용택시인>
벼슬에서 물러나 심신을 단련하고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라 하여 ‘퇴수정(退修亭)’이라 이름 지었는데, 호남 지방에서 소담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손꼽힙니다. 도로가에서 아래로 내려와 있고 표지판이 따로 없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변강쇠는 람천가에 발을 담그고 술 한잔에 세상 시름을 잊습니다.
변강쇠는 이번에는 실상사(사적 제309호)를 향해 길을 걷습니다. 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현재의 자리에 창건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화재를 입어 20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숙종 때(1680년) 300여 명의 수도승들과 함께 침허대사가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대가람을 중건했습니다. 또 순조 21년(1821) 의암대사가 두번째 중건을 했으며 고종 21년(1884)에 월송대사가 세번째 중건을 해서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실상사는 6•25를 맞아서는 낮에는 국군, 밤에는 공비들이 점거하는 등 또 한차례의 수난을 겪게 됐는데 용케도 사찰만은 전화를 입지 않았습니다.
실상사에는 변강쇠를 닮은 호탕한 얼굴의 장승도 있습니다. 실상사 입구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5호인 남원 실상사 석장승이 있는데 홍수에 1기가 떠내려가고 남은 1기가 있고 해탈교를를 건너가면 2기가 마주보고 지키고 있습니다. 다행히 석장승이라 변강쇠가 패서 불때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만수천 넘어 고개를 돌리니 멀리 천왕봉이 보입니다. 실상사는 지리산의 꽃잎에 해당하는 절입니다.
<실상사 앞을 지키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5호 남원 실상사 석장승>
천년 세월을 보내오면서 호국사찰로 알려진 실상사에는 유독 일본과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집니다.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져 있어, 일본으로 정기가 흘러가는 것을 막는다고 합니다. 이 절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동종에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고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열도를 두들겨 쳐서 일본의 경거망동을 나무랐는데 일제시대 때는 주지스님이 문초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약사전에 자리한 보물 제41호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일본지도가 그려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7호 실상사동종>
스님들이 동종의 일본지도를 많이 두드린 탓에 동종에 그려진 일본지도 중 훗카이도와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독도문제나 일본과의 관계가 힘들어질 때 실상사의 범종을 두르려 봄직도 합니다. 변강쇠는 주지스님이 두드리는 실상사 종소리를 들었을까요?
<실상사 경내 동서 삼층석탑과 중앙 보광전 앞 석등>
실상사에는 이상에서 말한 문화재 이외에도 보물 제37호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을 비롯하여 보물 6점이 더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점이 더 있습니다. 고즈넉한 실상사 경내에 서면 손 때 묻은 석등에서, 변강쇠가 쓰다듬어 보았을지 모르는 석탑에서 역사의 향기가 묻어납니다.
지리산 둘레길에 오시거덜랑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유서 깊은 우리 문화재를 찾아주세요! 변강쇠가 되어 퇴수정 앞 람천에 발도 담가보고, 흘러가는 만수천에 세상살이 근심도 띄워보내고, 실상사를 거닐며 천년 세월을 느껴보지 않으시렵니까?
▲제3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신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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