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부도(승탑,묘탑)에 대하여

여여니(여연) 2013. 5. 16. 09:51

 

부도 浮屠 

*다른이름: 승탑, 사리탑, 부두(浮頭), 포도(蒲圖), 불도(佛圖)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묘탑(墓塔).

부두(浮頭)·포도(蒲圖)·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데, 원래는 불타(佛陀)와 같이 붓다(Buddha)를 번역한 것이라 하고 또는 솔도파(率屠婆, stupa), 즉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라고도 한다. 어원으로 본다면 불타가 곧 부도이므로 외형적으로 나타난 불상이나 불탑이 바로 부도이며, 더 나아가 승려들까지도 부도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묘탑, 즉 부도라는 용어로 승려의 사리탑을 가리키는 실례는 신라 하대부터 보이고 있다. 872년(경문왕 12)에 건립된 대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의 비문 중에 “기석부도지지(起石浮屠之地)”라는 구절은 승려의 묘탑이 곧 부도라고 일컬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묘탑, 즉 부도를 세우는 것은 불교식 장례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불교가 전래된 때부터 묘탑의 건립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후반이지만 연대가 그때까지 올라가는 묘탑은 문헌상으로도 볼 수 없다. 다만 627∼649년경에 원광법사(圓光法師)의 부도를 세웠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이 시기를 부도 건립의 시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실물은 전하지 않고 844년(문성왕 6)에 조성된 전흥법사염거화상탑(傳興法寺廉居和尙塔, 국보 제104호)이 가장 오래된 부도로 추정되고 있다. 본래 부도의 건립은 법제문도(法弟門徒)들이 선사(先師:돌아가신 스승)를 섬기는 극진한 마음에서 스승이 입적(入寂)한 뒤 온 정성을 다하여 세우는 것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9세기에 이르러 당나라에서 선종(禪宗)이 들어온 이후 부도의 건립이 크게 유행하였다.

즉 9산(九山)의 각 선문(禪門)에서는 각기 사자상승(師資相承 :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학예를 이어 전함.)함으로써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으며, 각 선문에는 그 법문(法門)의 개산조(開山祖)와 개산인(開山人)의 순서로 뚜렷하게 하종파의 계보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각 선문의 제자들은 각기 소속 종파가 확정되면서 그들의 조사(祖師)를 숭앙하여 평시에 그가 설법한 내용이나 교훈 등을 어록(語錄)으로서 남기고, 입적 뒤에 선사를 추앙하기 위하여 당연히 후세에 길이 보존될 조형적인 장골처(藏骨處)를 남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기에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부도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나라 부도의 기점을 이루고 있는 전흥법사염거화상탑은 8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상대석(上臺石)·중대석(中臺石)·하대석(下臺石) 등의 기단부는 물론이고 그 위에 놓이는 탑신굄대·탑신부(塔身部)·옥개석(屋蓋石)·상륜부(相輪部)까지 모두 8각으로 조성되어 있어 전체적인 평면이 8각이다. 이러한 형식의 부도를 이른바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라 일컫고 있으며, 이후 신라시대에 건립된 부도는 모두 이러한 형태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국보 제59호)과 같이 평면이 4각으로 변하여 일반 석탑과 같은 형태의 부도가 나타나기도 하고, 범종 모양과 비슷한 형태의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가 나타나 8각원당형과 함께 발전되었다.

현존하는 부도의 대표적 예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쌍봉사철감선사탑(雙峯寺徹監禪師塔, 국보 제57호)·전흥법사염거화상탑, 고려시대의 흥법사진공대사탑(興法寺眞空大師塔, 보물 제365호)·정토사홍법국사실상탑(淨土寺弘法國師實相塔, 국보 제102호)·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 조선시대의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 국보 제197호)·회암사지부도(檜巖寺址浮屠, 보물 제388호)·법주사복천암수암화상탑(法住寺福泉庵秀庵和尙塔)·연곡사서부도(鷰谷寺西浮屠, 보물 제154호) 등을 들 수 있다.

부도에는 다른 석조물과 달리 탑비(塔碑)가 따로 세워져 있어 부도의 주인공과 그의 생애 및 행적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당시의 사회상·문화상 등을 알 수 있어 주목된다. 이와 아울러 각 부의 정교한 불교 조각과 화려한 장식문양도 조각의 극치를 보이고 있으며, 형태도 전체적으로 균형된 조형으로 조화미를 보이고 있어 우리 나라 석조미술의 백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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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