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편지명시명언

부부 -안도현

여여니(여연) 2006. 4. 28. 10:00
부부
늘 허투루 나지 않은 고향 길
장에나 갔다 오는지 보퉁이를 든 부부가
이차선 도로의 양끝을 팽팽하게 잡고 걷는다
이차로 간격의 지나친 내외가
도시 사는 내 눈에는 한없이 촌스러웠다
속절없는 촌스러움 한참 웃다가
인도가 없는 탓인지도 모르지
물건 사다 말싸움을 했을지도 몰라
나는 또 혼잣생각에 자동차를 세웠다
차가 드물어 한가한 시골길을
늙어 가는 부부는 여전히 한 쪽씩 맡아 걷는다
뒤돌아봄도 없는 걸음이 經行 같아서
말싸움 같은 것은 흔적도 없다
남편이 한 쪽을 맡고 또 한 쪽을 아내가 맡아
탓도 상처도 밟아 가는 길
안팎으로 침묵과 위로가 나란하다
이런저런 궁리를 따라 길이 구불거리고
묵묵한 동행은 멀리 언덕을 넘는다
소실점 가까이 한 점 된 부부
언덕도 힘들지 않다


오창렬 시인의 시다. 둘이 꼭 붙어 있는 것만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은 늙어가는 부부를 내세워 말하고 싶은가보다.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것도 모자라 아예 팔로 허리를 감고 거리를 걷는 젊은 연인들에게 이런 풍경은 얼마나 촌스러운가. 나란히 걷는 것도 아니고 앞뒤로 거리를 두고 걷는 것도 아닌, 이차선 도로의 양끝을 밟으며 걸어가는 부부. “탓도 상처도 밟아가는” 부부의 “침묵과 위로”는 요즈음 흘러넘치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 너머에다 말없이 사랑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마지막 행이 재미있다. 그 부부 때문에 언덕도 힘들지 않다고? 지금, 그 사랑이라는 성가신 말 때문에 우리들 세상의 언덕은 얼마나 시끄럽고 힘든가?

등록일 : 200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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