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40, 50代 ‘자아찾기’ …중년 ‘문화’에 빠지다

여여니(여연) 2006. 8. 1. 11:42

 

40, 50代 ‘자아찾기’ …중년 ‘문화’에 빠지다

 

<문화일보 2006/7/29/토/1면>

일·가족부양에 청춘 바쳐… 이제는 ‘나’를 성찰
극장에서 공연이 끝난 뒤 신나는 앙코르 노래에 맞춰 중년들이 일어나 흥겹게 몸을 흔든다. 추억의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문화여행을 하고, 산사에서 명상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최근 일과 가족 부양에 청춘을 바친 한국 중장년들의 문화예술 현장을 찾는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목숨을 걸고, 인생을 전투로 살았던’ 그들이 이제 삶의 경험과 교훈이 응축된 문화예술에 빠져 자아를 찾고 있는 것이다.

#1.춤추는 중년 = 28일 밤 10시15분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뮤지컬 ‘맘마미아!’(사진)가 끝나고 주연 박해미, 전수경, 이경미씨가 앙코르곡으로 주제가 ‘맘마미아!’를 흥겹게 부르자 ‘일부’ 젊은 관객들이 일어나 노래를 따라부르며 춤을 추자 ‘대부분’ 중년 관객들 가운데 용감한 몇몇이 쭈뼛쭈뼛 일어나 춤을 췄다. 이어 배우들이 또다른 앙코르곡 ‘댄싱 퀸’을 부르며 함께 춤출 것을 권하자 일어설 기회만 찾던 상당수 중장년 관객들이 ‘이때다’하고 일어나 온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여기에 박지일, 성기윤, 이정열씨 등 상대역 남자배우들이 가세, ‘워털루’를 부르자 중년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서 춤을 춰 오페라극장은 1970, 80년대 ‘디스코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달 18일 시작한 뮤지컬 ‘맘마미아!’는 28일 현재 평균 97%의 객석 점유율에, 29일이면 관객 10만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이는 2004년 초연의 객석점유율 85%보다 월등히 높은 기록으로 총 관객이 20만명을 훌쩍 넘어 3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맘마미아!’를 제작한 극단 신시의 박명성 대표는 “관객의 70%가 40대 중·장년층”이라며 “이들 세대에 유행했던 세계적인 그룹 아바의 노래를 가지고 중년의 사랑이야기를 흥겹게 그린 것이 중·장년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과 가족 부양에 정신없이 매달려왔던 중년들이 최근 웰빙 트렌드에 따라 건강을 해치는 음주 등 보다 문화향수로 취미를 바꾸기 시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2.추억의 동네 찾기 = 서울을 대표하는 주거공간은 아파트지만 40대 이상에게 ‘마음속 집’‘추억의 집’은 기와의 한옥. 80년대를 다룬 386세대 감독의 최근 영화 ‘효자동 이발사’‘사랑해, 말순씨’같은 영화도 추억의 출발점은 한옥 골목이다.

중년주부를 중심으로 일상의 활력을 돋우는 이색 이벤트로 강북 북촌을 둘러보는 한옥투어가 인기다. 서울 도심 번화가에서 안국동 위쪽의 헌법재판소를 지나 오르막길 부근 한옥마을이 고층아파트의 일상에서 어린 시절의 옛집을 연상케하는, 일종의 시간여행, 추억여행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한옥 보존지구인 북촌이 맛집과 미술전시장이 밀집한 고풍스러운 동네로 자리잡으면서 가회동, 재동, 교동, 안국동, 삼청동, 소격동 등 골목 구석구석 둘러보는 나들이객들이 적지않다.

지인의 가회동 한옥을 둘러본 직장인 박은이(여·45)씨는 “살기 편하게 개조한 다락 툇마루 쪽방에다 야생화를 심은 정원이 어릴 적 한옥처럼 친근했다”고 말했다. 중년의 약사 김정회 씨도 “얼마전 40년전 재동초교 동창들과 북촌에서 만나 살던 집을 찾아 동네 를 한바퀴 둘러봤다”며 “30여년전에 살던 집이 그대로 남아있어 정말 반가웠다”고 말했다.

#3.산사의 명상 = 전국의 산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중인 템플 스테이를 비롯, 각종 수행 프로그램에도 40대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 사찰의 여름 수행 프로그램 참가 연령대는 3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이 주축이다. 이는 서울 조계사에서 여름 하안거를 맞아 고우스님의 강의로 진행중인 ‘육조단경 대강좌’나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의 참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지난 3, 4월 주말마다 진행한 한암대종사 수행학림 참여자도 40대가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각종 수행 프로그램에 40대 참가자가 많은 이유로 그 나이면 부쩍 심해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욕구를 든다. 오로지 생존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여러 형태의 고비를 만나면서 삶에 대한 회의가 고개를 들고 내면의 자기를 만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아봐타 코스를 수료하고 불교의 각종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남편도 아봐타 코스로 인도했다는 김미정(여·45)씨는 “지금까지 오로지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으나, 이젠 삶과 일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하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조계사 주지 원담스님은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몸과 마음을 쉬면서 수행 등으로 재충전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나 이들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는 곳이 많지 않다”며 “40, 50대 재가자가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마련하는 것은 향후 종교계의 주요 과제”라고 말했다.

신세미·김승현·김종락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