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23살 때, 나는 부산에서, 등잔불이 켜져 있고 기차, 버스도 없는 이곳, 비탈진 산속 초가집으로 시집왔다. 앞은 지리산, 뒤는 백운산 사이로 흐르는 새벽 안개는 솜털이불을 덮어 놓은 양 아름다워서 정원 같은 농원을 만들고 세상 사람 모두 내 품에 보듬어 보리라 다짐했다.
외로이 홀로 핀 흰 백합꽃처럼 산 여인이 되어 아침이슬에 세수하고 부슬비에 손발 씻고 소낙비에 목욕한다. 섬진강 새벽 안개가 만들어준 솜털이불과 이슬 아닌 보석 요를 깔고, 강가의 예쁜 돌멩이를 베고, 흐르는 물소리 자장가 삼아 포근하게 잠이 든다.
흙밥에 산천초목의 반찬을 곁들여 먹고 개울물 숭늉을 따뜻하게 끓여 마신 뒤, 꽃 딸과 매실 아들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꽃 중의 꽃, 매화꽃아. 엄마 가슴에 피어라, 영원히 피어라. 섬진강 언덕 위, 백운산 골짝마다 광양시민 가슴마다 영원히 피어라.”
44년을 함께 보낸 꽃 딸과 매실 아들, 이슬이 아닌 보석을 이 여인만큼 많이 가진 행복한 부자 있으면 나와 보소. 이 여인이 부러우면 흙의 주인이 되어보소. 이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무 산속이라도 된장만 있으면 산채에 쌈 싸먹을 수 있고 두 손만 있으면 물 마실 수 있는 지상천국에 사는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는 꽃 천지를 만드네.
보리 꽃이 피면 작품이요, 보리가 익으면 황금벌판인 보리밭. 신선이 별것인가. 그 사이로 거닐면 이 여인이 신선인 것을. 야생화를 3만 평에 심고, 꽃 반지, 꽃 왕관을 만들어 쓰고 보면 천국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이곳이 천국이더라.
농사라는 작품이 도시민의 밥상을 약상으로 만들면, 농민과 도시민이 아름답게 만나네. 도시민들아, 어둠과 괴로움은 저 섬진강물에 다 씻어버려라, 힘들 때, 포근한 엄마의 품속같이 꼭 보듬어 줄게. 고향이 없는 이에겐 고향이 되어줄게.
외딴 산비탈에 살면서 사람이 그리워서 이 일을 시작한 나는 머리에 서리꽃이 피든 얼굴에 주름이 지든 일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농사꾼으로 영원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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