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 추기경 김수환 (金壽煥, 1922~2009)
한국천주교의 신부·대주교·추기경. 세례명은 스테파노. 1922년 5월 8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1944년 일본의 조치대학(상지대학) 철학과에서 수학하다가 2차대전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1951년 지금의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한 뒤 사제서품을 받고 안동천주교회 주임신부로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1953년 대구대교구장 비서신부, 1955년 김천천주교회(현재 황금천주교회) 주임신부 겸 성의중고등학교장을 지냈다. 1956~63년 독일 뮌스터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였다.
1964~66년 주간 가톨릭시보(현재 가톨릭신문) 사장을 지냈다. 1966년 마산교구장에 임명되며 주교가 되었고, 1968년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하면서 대주교가 되었다. 1969년 교황 바오로6세에 의해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1970년 이후 두 차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으며, 1975~98년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임하였다. 또한 1967년 이후 교황청 세계주교회의에 한국대표로 6차례 참석하였다.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2세가 집전한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해 한국순교자 103위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으며,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열어 헌혈·장기기증 등 나눔의 실천운동을 펼쳤다.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하면서 “교회는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교회 쇄신과 현실참여 원칙을 밝혔다. 그뒤 30년간 서울대교구장을 지내면서 항상 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였으며, 억압적인 정치현실과 불평등한 노동문제 등에 관해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는 등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옹호에 헌신하였다.
1998년 5월 정년(75세)을 넘기면서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에서 퇴임하였으며, 2009년 2월 16일 노환에 따른 건강악화로 타계하였다.
1970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 2000년 심산상과 인제인성대상, 2001년 대십자 공로훈장(독일), 2002년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대십자훈장(칠레) 등을 받았다.
저서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981) <이 땅에 평화를>(1988)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1994)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과 사랑>(1997)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1999)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1999) <김수환 추기경 전집, 전18권>(2001)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2004년) 등을 남겼다.
*참고: 김수환추기경 홈페이지(http://cardinalkim.catholic.or.kr), 일간신문기사, 인터넷백과 외 (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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