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박지원|그린비|2008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이 마흔넷에 열하를 연행하고 그 이듬해부터 3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글의 구성과 문장력, 중국 고전을 인용하는 방대한 지식이 현대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1780년대 당쟁과 유학의 편협함에 빠져 있던 조선에서 그는 유학은 물론 건축, 토목, 의약에서부터 천문, 종교, 음악에 이르기까지 박학다식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사절단에서 유일하게 개인 자격으로 여행을 하였다. 그의 진정한 여행 목적은 기행문을 쓰는 데 있었던 듯하다. 그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이를 기행문에 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가 이렇듯 여행 중 힘들게 일기를 쓴 까닭은 자신이 경험한 큰 세상을 조선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성리학의 사대에만 갖힌 조선의 선비들에게 열린 사상과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일갈하고 싶었을 것이다.
연암은 우리 문학사의 최고봉에 속하는 위대한 작가다. 그는 과거를 통한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말과 글로 표현했다. 그의 글은 중국의 소동파의 재주에 견줄 만큼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방대한 지식을 유려한 필채로 풀어내는 능력과, 천하의 아름다운 장관을 묘사하는 문장과, 사물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해석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정도다. 200년이 넘은 글이건만 연암의 느낌과 사상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듯하다. 이것이 고전읽기의 즐거움이다.
책 속으로
입과 귀에만 의지하는 자들과는 더불어 학문에 대해 이야기할 바가 못 된다. 평생토록 뜻을 다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학문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성인이 태산에 올라 내려다보니 천하가 작게 보였다”고 말하면,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입으로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가 시방세계를 보았다”고 하면 허황하다고 배척할 것이며, “태서(서양을 말함) 사람이 큰 배를 타고 지구 밖을 돌았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버럭 화를 낼 것이다.
대개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마땅히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만 한다. 더구나 삼대 이후의 성스럽고 현명한 제왕들과 한․당․송․명 등 여러 왕조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한 원칙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성인이 <춘추>를 지으실 제, 물론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려고 하셨으나, 그렇다고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히는 데 분개하여 중화의 훌륭한 문물제도까지 물리치셨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면 중화의 전해오는 법을 모조리 배워서 먼저 우리나라의 유치한 습속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천하의 우환거리는 늘 북쪽 오랑캐에게 있는 탓에, 강희제 시절에는 그들의 항복을 받아낸 뒤에도 열하에 행궁을 세우고 거기에 머물렀다. 그러자 몽고의 강력한 군대도 중국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이처럼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방비하게 되니, 군비는 절약되고 국경 방어는 굳게 다져져서 지금의 황제는 친히 군대를 통솔하여 그곳을 지키고 있는 셈이 된다. 서번이 비록 강하고 억세긴 하지만 황교를 몹시 공경한다. 이에 황제는 그 풍속을 따라 몸소 번승을 모시고 사원을 찬란하게 꾸밈으로써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명목상 ‘왕’으로 봉하여 그의 세력을 포섭하였다. 이것이 바로 청나라가 천하를 제어하는 방법이다.
(2010년 12월)
'출판잡지서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조선은 출판왕국이었다 (0) | 2011.12.27 |
---|---|
[스크랩] <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0) | 2011.01.31 |
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 경주 남산 (0) | 2010.06.30 |
그림아는만큼보인다_다음책 (0) | 2010.06.19 |
커피우유와소보로빵_다음책 (0) | 2010.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