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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은 출판왕국이었다

여여니(여연) 2011. 12. 27. 09:59

 500년 역사의 조선시대는 기록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현존하는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해 수많은 <의궤>들은 조선이 이룩한 기록 문화를 대변해 준다. 이러한 기록 문화는 책으로 출판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까지 남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특히 세계에 유례가 없는 단일 왕조 472년의 역사 기록물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글자 수는 총 5,300여만 자이다. 이렇듯 조선 국왕과 통치자들은 실록 편찬을 국가의 중대사로 여기고, 인력과 물력을 총동원해 제작했다.


조선은 국가적인 행사를 치룬 후에는 행사 전 과정과 투입된 인력, 물자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으로 남겨 <의궤>를 제작했다. 실록 편찬작업도 역시 국가의 중요사업이었던 만큼 그 과정을 <실록청의궤>로 남길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의궤> 등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들이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이러한 기록 문화를 탄생시킨 조선시대는 하나의 ‘출판왕국’이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시대 책과 출판에 관한 각종 사례를 담은 책 <조선출판주식회사>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흥미진진한 출판왕국으로서의 면모를 자세히 파헤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국왕과 신료들이 조정의 회의석상에서 책 편찬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고 한다. 마치 국왕이 주관하여 편집회의를 하는 것처럼 어떤 책을 어떻게 펴낼지를 논의하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왕은 직접 교정을 보기도 하고 저술을 남김으로써 책을 편찬하는 일이 통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보여주었다고 한다. 책의 편찬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조선의 국왕 중 가장 왕성한 저술활동을 한 왕은 영조와 정조다. 영조는 53년간 재위하면서 80여 종의 어제(御製, 왕이 직접 지은 글)를 남겼다고 한다. 정조는 24년간 재위하면서 모두 19종의 어제를 통해 184권 100책을 남겼다. 정조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영조는 평생동안 2만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조선시대의 권과 책의 개념은 오늘날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저자는 문치주의를 내세웠던 조선은 통치이념과 통치방법을 담은 책을 근거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다고 분석한다. 조정에서 필요한 책이 부족할 때는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을 징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책을 중앙이나 지방 관청에서 직접 발행했다. 통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던 책을 발행하는 일은 일종의 국책사업이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책을 통해 유교이념을 전파하고자 했던 조선 조정에서는 민간에 서점을 설립해 책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당시 가장 중요한 정보 매체는 책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정보를 장악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는 법인데, 당시 책은 ‘권력의 상징’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나고 전 세계 다양한 책들이 번역되어 소개되는 세상이지만 당시 조선시대 당시엔 중국에서 들여오는 책이 매우 귀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신료들은 국왕의 부탁이나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많은 양의 책들을 귀국길에 사서 들여왔다고 한다. 당시 중국과 자유로운 무역이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공사절 파견은 책을 구해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는 것이다.


청나라 수도 북경의 유리창(琉璃廠) 거리에는 서점들이 많았다고 한다. 유리창이 가장 번화했던 건륭 연간(1736~1795)에는 이곳에 100여 채의 서점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의 관료나 선비라면 누구나 이곳을 돌아볼 기회가 주어지길 열망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책과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당시를 뒤돌아보면, 조선 시대 선비들이 품었던 책에 대한 열망은 다소 안쓰럽기까지 여겨지는 대목이다.


저자는 조선의 책은 통치자가 독점한 정보 매체이자 통치 수단이었다고 평가한다. 책을 발행하고 보급하는 일에 대한 국가의 관여는 아주 철저하고도 세밀했다고 한다. 어떤 책을 어디서 간행할지를 국가에서 정했으며, 책의 형태, 발행부수, 배포자 명단까지 국왕의 허가를 거쳐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조선 시대 당시 책에 대한 시각이나 제작과정, 관리와 보존 방식 등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다. 목숨을 걸고 실록을 기록했던 사관에 얽힌 역사나 임진왜란 당시 사고에 보관된 실록을 보존하기 위한 민초들의 역할 등 흥미로운 대목도 많다. 이 책은 조선 시대 당시 책과 기록 문화에 대한 왕과 신료들의 열망과 시각을 살펴보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출처 : 루덴스`s 트라이라이프
글쓴이 : 루덴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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