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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선 목민심서> 정약용

여여니(여연) 2011. 1. 31. 09:43

공직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정선 목민심서 | 정약용 | 창비 | 2005. 3. 30.

 

 

 

 

얼마 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중앙일보에 게재한 <목민심서> 서평을 읽었다. 그는 이 책을 공직의 지침서로 삼고 있다고 하였다. 또 부패한 남베트남 정권을 무너뜨린 호찌민이 바로 이 책, <목민심서>를 머리맡에 놓고 아껴 읽었다고 한다. 공직자인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구입해서 읽었다.

 

<목민심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유배지 강진에서 지은 책으로 순조 21년(1821)에 완성하였다. <경세유표>, <흠흠신서>, <마가회통> 등 총 500여권을 헤아리는 방대한 저술 중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지방 행정관의 지침서쯤 되겠다. 다산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지방의 수령이 일을 돌보지 않아 아전의 횡포와 농간이 심해 여러 가지 폐단이 생겨나는 것을 직접 보고 들었다. 그러나 몸이 묶여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心書)’라 하여 이 책을 집필하였다.

 

그는 서문에서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부패하고 무능한 수령을 꾸짖는다. 그러면서 진실로 어진 수령이 있어 자기 직분을 다할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이 방향을 잡아 줄 것이라면서 수령들에게 권한다.

 

<관자>(官子)라는 고전의 「목민(牧民)」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 있으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풍족하면 영욕을 안다”고 하였다.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지 못하고 의식이 부족해서일까, 오늘날 사회가 어지럽고 공직자의 비리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보다 더한 시대가 있었으니 바로 다산이 살았던 조선후기가 그렇다.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보에 편입되고, 이정(理正, 관리)이 못 바친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가자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기 성기를 스스로 베면서 ‘내가 이 물건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고 말하였다. 아내가 그 성기를 가지고 관문에 나아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졌고, 울며 호소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가혹한 군포의 징수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과 분노가 서려있다. 이뿐만 아니다. 책에는 관리들의 부패, 아전의 횡포와 백성들의 피폐한 생활이 생생하게 들어있다.

 

관에서 빌린 곡식은 거의 대부분 먹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것의 몇 배나 갚아야 했으며, 심지어 빌리지도 않은 곡식을 갚아야했다. 호수(戶數)를 줄이기 위해 부촌에서는 1,200냥을 바치고, 그 다음 촌에서는 80냥을 바친다. 그러면 그 부촌에서 감해진 호수가 모래처럼 샇이고 구름같이 변해서 요역을 지지 않는 곳에 붙게 된다. 호적을 처리하는 아전은 큰 고을에는 넉넉히 1만 냥을 먹고, 작은 고을이라도 3천 냥을 넘게 먹는다. 그 이익이 이와 같으니, 간사하고 교활한 아전은 호적을 작성하기 위해 베와 비단, 진귀한 어포와 큰 전복 따위를 구하여 서울로 싣고 가 선을 대어 부탁한다. 부역은 공평하지 않아, 1만 호가 있는 고을에서 9천 호는 부역을 도피하고, 오직 홀아비와 과부, 병들고 불구가 된 사람들만 부역에 응하고 있다.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운 서술은 독자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병폐가 이와 같았으니, 오죽했으면 다산이 ‘백성이 죽고 나라가 망하는 일이 바로 눈앞에 닥쳤다.’고 까지 하였을까.

 

 

 

 

그러나 다산은 시대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제의 해법을 진정으로 강구한다. 그리고 실천적 방안을 제시한다. 다산에게 있어 진정한 목민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 있다. 백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에 정치제도의 개혁과 지방행정 개선이 절실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홀아비, 과부, 고아, 늙어 자식 없는 노인, 병이 심한 사람은 스스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지방관청에서 마땅히 거두어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은 ‘유리걸식하는 자는 하늘이 버린 자로 거두어 길러도 곡식만 낭비할 뿐, 죽어도 슬플 것이 없고 나라에도 애석할 것이 없다.’고 말을 하는데, 다산은 수령은 마땅히 유리걸식하는 자를 거두고 어루만져주는 것이 하늘의 이치라고 하였다. ‘수령을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수령이 있다’는 다산의 애민사상과 민본사상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또한 둑을 쌓고 방죽을 만들어 수재를 막고, 환난이 있을 것을 생각해서 예방하는 것이 재앙을 당한 후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다. 토지를 다시 측량하여 고의로 조세 대상에서 누락시킨 땅을 바로잡아 원래의 액수를 채워야 하고, 부역을 공평히 하는 것에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교묘하게 명목을 세워 수령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을 모두 없애고, 과도하거나 허위로 만들어진 것은 다 삭제해 백성의 부담을 가볍게 해줘야 한다고 하였다.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다운 그의 개혁사상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부패할 대로 부패한 시대적 상황에서 백성을 위해 고뇌하는 다산의 인간애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후기 실학자답게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지식인의 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다산은 조선의 진정한 천재 사상가요, 개혁자였다.

 

이 책은 수령이 임명을 받아 부임하는 행장을 꾸리는데부터 시작한다. 수령이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 및 자세와 마음가짐, 그 직을 마치고 떠나는 순간까지 수령으로서의 역할이 실려 있다. 묘사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이는 다산이 22세에 진사에 합격하여 19년 동안 관직생활을 한 경험과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실상을 몸소 겪었다는 점, 무엇보다 백성의 눈으로 당시 사회를 바란 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목민심서>는 공직자인 나에게 그 어떤 형식적인 교육이나 제도화된 규율보다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공직자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나로 하여금 그 고민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책이자, 그 물음에 훌륭한 답을 주는 책이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누구의 어떤 말보다 공직자로서의 삶을 바로 세워준다.

 

48권 16책으로 이루어진 <목민심서>를 1985년 다산연구회에서 한글 6권으로 번역한 것이 <역주 목민심서>다. 그런데 일반 독자가 읽어내기에는 실로 만만치 않아 그 내용을 추리고 뽑아 대중적 교양서 한 권으로 만든 것이 이 책 <정선 목민심서>다. 340페이지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술술 읽히는 것도 좋은 점이다.

 

<목민심서>는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 조선을 되살리고자 하는 정약용의 꿈이 담겨 있다. 요즘 또 다시 공직자의 도덕성이 사회적인 화두가 되었다. 이런 때 공직자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나 공직자의 길로 들어 선 사람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또한 ‘목민(牧民)’이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회초리를 들 수 있기에 일반 국민들도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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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것의 근본은 검소함에 있다. 검소해야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해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함이야말로 목민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요즘 수령으로 부임하는 사람들은 책력(冊曆) 이외의 다른 책은 한 권도 행장에 넣지 않는다. 임지에 가면 으레 많은 재물을 얻게 되어 돌아오는 행장이 무겁기 마련이니, 한 권의 책도 부담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슬프다, 그 마음가짐의 비루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 목민인들 제대로 할 것인가! 돌아오는 날에 토산물을 싣지 않고, 이 책수레만 가지고 돌아온다면, 어찌 맑은 바람이 길에 가득하지 않겠는가?

 

아전들은 늘 “이 일은 비밀이라 사람들이 아무도 모릅니다. 퍼뜨리면 제게 해로울 뿐이오니 누가 감히 퍼뜨리겠습니까?”라고 말한다. 그래서 수령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뇌물을 흔연히 받지만, 아전은 문을 나서자마자 마구 떠벌려 자신의 경쟁자를 억누르고자 하니, 그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지건만 수령은 들어앉아 고립되어 있어서 전혀 듣지 못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한결같이 곧게 법만 지키다 보면 때로는 일 처리에 너무 구애받을 수도 있다. 다소 넘나듦이 있더라도 백성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옛사람도 혹 변통하는 수가 있었다. 요컨대 자기의 마음이 천리의 공평함에서 나왔다면 반드시 법에 얽매일 필요는 없으나, 자기의 마음이 사사로운 욕심에서 나왔다면 조금도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 법을 어겨 죄를 받는 날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봐도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 법을 어긴 것이 반드시 백성을 이롭고 편하게 한 일이니, 이같은 경우는 다소 넘나듦이 있을 수 있다.

 

전임자와는 동료로서의 우의가 있기 때문에 교대할 때에 옛사람들은 후덕함을 좇아, 전임자가 비록 탐욕스럽고 불법을 저질러서 그 해독이 가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화평하고 조용히 고쳐서 전임자의 행적이 폭로되지 않게 하는 데 힘썼다. 만일 급박하고 시끄럽게 일일이 지난 정사를 뒤집고 큰 추위 뒤에 따뜻한 봄이 온 것처럼 자처하여 혁혁한 명예를 얻으려고 한다면, 이는 그 덕이 경박할 뿐 아니라 뒤처리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혹 전임자가 세력 있는 집안이나 호족 출신이어서 자신의 강함을 믿고 일처리가 이치에 어긋나고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강경하고 엄하게 대응하여 조금이라도 굽혀서는 안된다. 비록 이 때문에 죄를 얻어 평생을 불우하게 지내더라도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수령이 아전들이나 향청직원들의 한두 가지 숨겨진 부정을 듣고는 마치 대단한 기회인 양 그 부정을 들춰내어 세상에 드러내놓고 떠들며 세세히 밝혀내는 밝음을 과시하는 것은 천하에 박덕한 짓이다. 큰 사건은 들춰내되 작은 일은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하고, 혹은 속짐작만 하기도 하고, 혹은 은밀히 그 사람을 불러 따뜻한 말로 훈계하여 스스로 반성하게 하는 등 너그럽되 늘어지지 않고 엄격하되 가혹하지 않아 온후하게 덕으로 대해야 한다. 진심으로 감동하여 따르게 하는 것이 아랫사람을 잘 거느리는 길이다. 깊은 물속에 숨은 고기를 세세히 살피고, 경솔하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 어찌 훌륭한 수령이 할 바이겠는가?

 

속담에 “벼슬살이는 머슴살이”라고 했으니, 아침에 승진했다가 저녁에 쫓겨날 수도 있을 만큼 믿을 수 없음을 이른 말이다. 그런데 수령으로서 천박한 자는 관아를 자기 집으로 알아 오랫동안 누리려 생각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상급관청에서 공문이 오면 어쩔 줄 몰라 하기를 마치 큰 보물이라도 잃어버린 것같이 한다. 그러므로 옛날의 현명한 수령은 관아를 여관으로 여겨 이른 아침에 떠나갈 듯이 늘 문서와 장부를 깨끗이 해두고, 항상 행장을 꾸려놓아 마치 가을 새매가 가지에 앉아 있다 훌쩍 날아갈 듯이 하고, 한 점의 속된 애착도 마음에 품지 않는다. 교체한다는 공문이 오면 즉시 떠나고, 활달한 마음가짐으로 미련을 갖지 않았으니, 이것이 맑은 선비의 행실이다.

출처 : 서평의 숲을 거닐다
글쓴이 : dobes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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