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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축구선수 무엇으로 사는가

여여니(여연) 2005. 4. 21. 13:55
한국축구 매거진 2005년 4월 20일 (수) 17:55  베스트일레븐

은퇴한 축구선수 무엇으로 사는가

베스트일레븐은 지난 3월호를 통해 초등생 축구선수 1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진출하기까지, 또는 대학에 진학 하기까지 모두 1억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고 보도했다. 기사가 나간 후 반향은 상당했다.

"꽤 많은 돈이 들겠다는 예상은 했지만 구체적인 액수를 보고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고, "돈 없으면 축구하기도 힘든 세상"이라는 반응도 더러 있었다. 공감 간다. 1억원이 어디 적은 돈인가. 그래도 성공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한결 위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차범근 황선홍 홍명보처럼 대성하는 스타는 소수에 불과하다. 정작 프로가 되더라도 살아남기 쉽지 않을뿐더러 그 안에서 이름 떨치기는 더더욱 힘겨운 일이다. 실은 프로 무대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축구화를 벗어 던지는 케이스가 십중팔구쯤은 너끈히 된다.

오로지 축구 하나에 인생을 송두리째 내맡긴 선수가 자의든 타의든 어느날 불현듯 은퇴 기로에 섰을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제도상의 근본적 구제책은 존재할까.

서준형=글 text by Joon Hyung Seo / 이완복=사진 photograph by Wan Bok Lee




현실을 관찰하다

일단 시기별 구분이 필요하다. ①중·고교 졸업 직후 ②대학 졸업 직후 ③실업 혹은 프로 은퇴 등 대략 3가지로 분류하면 크게 무리 없다. 대한축구협회(KFA) 등록 선수 및 팀 숫자는 삼각형의 피라미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초.중. 고.대.실업 및 프로로 갈수록 두드러지게 감소한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시작한 학생 전부가 고등학교 또는 그 이상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는 없다. 구조 자체가 그렇다. 그런데 중학교 진학과 때를 같이해 축구판에서 이탈하는 인원은 그 수효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대개 자의적 결정에 따른 경우가 많아 논제에서 아예 제외키로 한다.

그렇다면 ①②③ 중 과연 어느 때 제2 인생을 꾸려나가기가 용이할까. 정답은 없다. 통상 축구계에 남고자 할 경우에는 ③, 전혀 다른 삶을 계획하고 있을 경우 ①이 낫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실업 이상의 단계를 경험한 플레이어는 흔히 일정 수준의 인적 네트워크를 축적 하고 있다. 요는 알음알음으로 일자리 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종은 지도자가 주를 이룬다. 반면 중· 고교 졸업 직후 필드를 떠나는 선수들은 ②③에 비해 사회 적응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시점상 ②는 이래저래 애매하다. 4년 혹은 2년의 대학 생활 동안 목표 의식이 분명치 않을 경우 미래는 더 암담해진다. 예서 목표 의식이란 한 우물에 몰두, 축구로 승부를 보거나 아니면 최대한 빨리 새 길을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둘 다 위험요소는 있게 마련이다. 축구에 매진하고도 상위 레벨로 도약하지 못할 수 있고, 다른 길을 걷더라도 적응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 일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수의 길을 고집하다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벅차다. 더군다나 ②의 해당자 거개는 당장 또 하나의 걸림돌인 군대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①의 보기 내에서도 차이는 있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은퇴하는 선수와 고교 졸업 후 운동을 그만두는 선수 앞에 놓인 선택의 폭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전자는 뒤늦게라도 학업을 시작할 수 있지만 후자는 사실상 다시 펜을 잡기 어렵다. 연필 대신 축구공을 택한 초교 3·4학년 이후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기초 학력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탓이다. 다들 익히 잘 아는 것처럼 비뚤어진 교육시스템으로 인해 이 땅에서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없다. 수 십 년을 그래왔다. 최근 축구 선진국의 클럽 문화가 유입되며 변화의 기운이 다소 감지되고 있긴 하나 아직 멀었다.



축구판에서 경기인 출신 찾기가 어렵다 왜?



경기인 출신들의 진로가 세부적으로 정리된 통계 자료가 있을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없다. 한국축구계는 전통적으로 정보 구축에 약하다. 쓸데없는 바람은 실망감만 한껏 부풀려 줄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확인해야 할까.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추적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난해한 일이다.

먼저 제도권에서부터 살펴본다. 80여명에 달하는 KFA 직원 중 축구선수 출신은 10명 안팎이다. 대표적으로 조중연 부회장, 노흥섭 전무이사, 김진국 기획실장, 이회택 기술위원장, 강신우 기술위원회 부위원장, 조영증 파주NFC센터장, 조정수 상벌위원장, 안봉기 심판위원장, 국제부 김주성 이사 등이 꼽힌다. 백분율로 따지면 전체 상근 인원의 15%조차 되지 않는다.

20여명이 상근하는 프로축구연맹에는 경기인 출신 인사가 이풍길 경기위원장, 남궁용 상벌위원장, 김용대 심판위원장 등 단 3명뿐이다.

이렇듯 핵심 축구기구에 종사하는 경기인 출신은 드물다. 왜 그럴까. 현장 체험이 풍부한 경기인 고유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는 정책 부재 탓이 우선 크다는 지적이다.

축구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 김익수 일본국립신슈대 교수는 "일본축구협회나 J리그 연맹에서 경기인 출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양적인 면에서도 오히려 비경기인 출신을 압도한다. 물론 그 모두가 한 순간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나타난 변화라 할 수 있다.

일본도 한때는 협회 요직에 경기인 출신을 중용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만 근래 달라진 것이다. 경기인 출신들의 현장 지혜를 적극 빌리자는 정책적 시도가 그 첫걸음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데 이제는 힘의 무게가 경기인 출신 쪽으로 본격 이동했다. 확연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기인 출신도)충분히 능력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기인 출신 상당수는 경험과 이론을 겸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간명히 말해 경기인 대다수가 경험은 풍부한 반면 이론적인 무장은 허술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축구史는 깊고 유구하다 자랑하지만 진정 자랑할만한 전술지침서 하나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그 까닭이야 빤하다. 슬픈 일이지만, 생각을 풀어내고 정리·요약·전달할 힘이 없는 것이다. 왜? 평생 공부는 등진 채 오직 필드만 지켜왔기 때문이다.

꽤 성공한 축구인으로 평가받는 한 인사는 "축구선수의 길로 접어든 이후 지금껏 볼만 끼고 살았다. 언제 공부를 했겠는가. 학창시절 최대 화두는 무사히 상급학교로 진학해 프로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운동할 짬도 모자랐던 판에 감히 공부할 엄두가 났겠는가. 또 어디 공부할 환경이 됐나. 모 아니면 도라고 내게 축구는 생존의 수단이었다. 출세를 꿈꿀 수 있는 유일의 길이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실정이 이러하다.

이제 화제 범위를 프로구단으로 넓혀본다. 현재 K리그 13구단에서 일하는 프런트 인력을 모두 더하면 150명이 넘는다. 코칭스태프는 제하고 사무국 인원만 계산했다. 그 가운데 경기인 출신은 정확히 6명이다. 주인공은 안종복 인천 단장, 안기헌 수원 단장, 김영진 성남 부단장, 이종하 포항 지원팀장, 이한우 광주 운영팀장, 권성길 부산 대리(유소년클럽 담당). 퍼센티지로 환산할 때 겨우 4%에도 이르지 않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 소대현 울산 홍보팀장은 "의외다. 그렇게 적은 줄 몰랐다. 경험에 비춰볼 때 경기인 출신 프런트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특히 상황에 따른 선수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한 후 대응하는 요령이 특출하다. 조직 융화력도 뛰어나다. 그럼에도 극소수 인원만 활동하는 이유는 결국 전반적인 행정 업무 소화능력에서 다소 단점을 드러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구단사무국 직원들은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다루고 갖가지 문서도 작성한다.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만만히 여길 수 없는 일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앞서 거론된 인물들은 각자 영역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졌다. 쉽게 말해 성공한 축에 속한다. 비근한 예는 더 있다.



은퇴 후 진로에도 부익부 빈익빈 있나

해설위원으로 명성을 쌓고있는 이용수(세종대) 신문선(용인대) 교수는 누가 보더라도 입신양명한 축구인이다.

서울체고 동기생인 두 사람은 프로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도 선명한 공통점이 있다. 운동과 학업을 지속적으로 병행, 박사학위 까지 따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중반 K리그 현대-유공에서 공격수로 뛰었으며 국가대표 경력도 있는 김종환 중앙대 교수 역시 마찬가지. 이들 세 사람은 학구열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모교 서울체고의 독특한 교육방식 덕을 톡톡히 본 것도 사실이다.

당시 서울체고는 모든 학생들에게 지·덕·체를 고루 갖출 것을 요구, 수업-운동시간을 철저히 분리 운영했고 성적 미달자는 가차없이 낙제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엘리트化를 추구했다.

1970년대 아시아 대표 수비수로 이름 날린 후 K리그 최다승 감독의 역사를 쓴 김호 숭실대 교수, 분데스리가 간판 스트라이커에서 국내 최고 인기 사령탑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차범근 수원 감독,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축구 행정가에 도전중인 홍명보 KFA이사 등도 성공 사례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빠뜨린 이름이 더 많다. 거듭 밝히지만 그래도 일부일 뿐이다. 유다른 열정을 품고 십 수년 세월을 축구에 걸고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얼굴이 대부분이다.

몇 해 동안 프로에서 뛰다 지난해 방출된 후 새 직장을 구하고 있는 한 선수는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보다 더 막막하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어떻게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나. 겁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축구판에서 일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지만 그마저 영 쉽지가 않다. 초등학교 코치 자리라도 있으면 냉큼 달려갈텐데"라며 연방 한숨을 뿜었다.

속사정을 모르는 일반 팬들은 은퇴한 축구선수 모두가 지도자로 변신하는 게 당연한 순서인줄 아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코치, 감독 지원자는 숱하다. 하지만 정작 빈자리는 가물에 콩 나듯 한다. 때문에 경쟁이 심하다. 한번 짚어보자.

신규 채용 공고가 나기 위해선 결원이 발생하거나 창단하는 팀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결원 발생률도 높지 않거니와 학원팀의 숫자는 매해 소폭 증가하는 선에서 그친다. 그런데 반대로 축구인 실업률은 가히 폭발적이다. 실업·프로팀에 매년 100명 이상의 뉴페이스가 입단한다는 것은 곧 해마다 그 숫자만큼의 구성원이 일터를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뿐 아니다. 고교 졸업 직후 방향을 실종하는 1,000여 명을 셈에 포함할 경우에는 실로 마땅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생기는 부작용은 이미 우려 수준을 넘어선 지경에 도달한 분위기이다.

평소 학원축구 시스템의 대대적 개혁을 역설하는 이용수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 해 고3 졸업생이 1,500명에 육박한다. 그 중 대학이나 프로, 실업팀으로 둥지를 옮겨가는 선수는 400명 정도에 불과한 형편이다. 안타까운 것은 순식간에 사회적 미아로 전락한 이들이 택하는 가장 보편적인 길이라는 게 초·중·고교에서 코치 감독을 하는 것인데 어디 맘먹은 대로 되나. 임자가 벌써 다 버티고 있는데. 그래도 살겠다고 발버둥치다 보니 제 살 뜯는 악수를 둔다. 기존 지도자들을 뒤에서 헐뜯고 비방해서 몰아낸 후 그 자리를 꿰차고 앉는 것이다. 작금 축구 밑바탕은 아주 진흙 바닥이 돼버렸다."

프로에서 한가락하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위명을 떨친 빅스타 몇몇은 은퇴해도 딱히 걱정이 없다. 녹록잖은 이름값에 따르는 팬 또한 상당하니 구단이 알아서 해외연수도 보내주고, 돌아오면 코치직도 선뜻 내주기 때문이다. 그저 예정된 코스만 차근차근 밟으면 그만이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일면 온당한 프리미엄이다. 그러나 그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한 선수는 손에 꼽을 만치 한정적이다. 그리 뾰족한 대책이 없는 다수의 범부 입장에서는 마치 드라마 속 환상 같은 그림에 다르지 않다. 현역 중도하차, 혹은 은퇴 후 전혀 낯선 궤도를 노크하는 축구인들의 대체적인 항로는 어떠할까. 프로 2군의 무명설움에 지쳐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 벤처 사업가로 새 삶을 꾸리고 있는 C씨의 사실감 있는 육성을 전한다.

"경쟁에 밀려 한창 때 거리로 내몰리면 솔직히 앞이 캄캄하다. 처음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갈 데가 없다. 일찍 은퇴한 주위의 동기, 선후배들도 사정은 비슷비슷하다. 같은 목소리로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한데 신기한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은 다들 제 살 길을 찾더라. 운동선수 특유의 인내심이나 근성, 집중력이 구직에 많은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현실적으로 사무직 취업은 어렵다. 생산·영업직 일을 얻어 새 출발하는 게 보통이다.

보험 회사에 취직하거나 동대문에서 의류관련 기술을 배우며 재기를 다지는 친구들도 여럿 봤다. 그러나... 인맥을 이용해 유흥업소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예가 아마도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꽤 충격적일 수도 있는데, 월드컵대표 경력이 있는 한 선배도 지금 유흥업계에 몸담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은 거둬달라. 누구보다 성실히, 땀 흘리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난관 많지만 그래도 해법은 있다

이의수
여자축구연맹 회장


현역 은퇴자들을 축구계 내부로 흡수할 장치는 있을까. 역시나 없다. 하지만 근원적 묘안은 있다. 학원축구의 메커니즘을 효율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이용수 교수가 제시하는 해법을 주목해보자.

"더 이상 어린 학생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선수로 성공하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더라도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당당히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선배들의 몫이다. 방법은 있다. 전국대회 성적에 목매는 현행 방식을 뜯어고쳐 학업과 운동을 겸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속히 지역·연령별 리그 제도를 대대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더불어 학기 중에는 정규 수업시간에 운동하는 것을 일절 금하고, 이를 어길 경우 협회차원에서 엄중 조처해야 할 것이다. 전국대회는 방학기간인 7월 중순에서 8월말 사이에 열면 족하다. 어린 싹들을 보호하는 일을 더는 늦출 수 없다."

사실 KFA 내부 방침도 이 교수의 주장과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제법 의지도 있다. 학원팀의 전국대회 참가 횟수를 연중 3회로 전격 제한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처방이다. 그러나 전국대회 개최횟수를 줄이는 일만큼은 당분간 현실화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 해 각지에서 열리는 전국대회는 무려 70차례가 넘는다. 놀랄 일이다. KFA 또한 과다하다는 것에는 일부분 동의하면서도 별달리 손을 쓰지 못한다. 대회를 주최, 후원하는 주체가 거의 중앙 또는 지방언론사라는 점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 아리송한가. 괜히 밉보였다가 화라도 입을까 염려하는 탓이다. 이처럼 실타래는 복잡하게 꼬여있다. 이해 당사자 간 원만한 협의 없이는 문제 해결도 요원하다.

10년 가까이 현장 실무를 담당하는 이동남 부천 대리는 이 교수와 다른 각도에서 안을 제시했다. 귀기울일 만 하다. "협회에서 '축구 아카데미'를 신설할 것을 적극 제안한다. 일종의 교육기관이다. 요지를 간략히 설명하면 명망 있는 축구계 분야별 전문가가 은퇴한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집중 훈련시켜 역량을 갖춘 직업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비디오분석, 재활 트레이닝, 전략·전술이론, 심리학, 생리학, 영양학, 행정학 등 과목은 얼마든지 세분화할 수 있다. 수료 후에는 프로나 실업팀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협회-구단의 다각적인 연계가 필요하다."

이에 송기룡 KFA홍보국 차장은 "좋은 의견이다. 일본축구협회도 지난해부터 경기인 출신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 훈련을 계획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도 한번 심도있게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 협회와 구단이 컨소시엄을 형성하면 의외로 일이 잘 풀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협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 보다 전문기관에 위탁하는 형태가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도 보완 및 개혁 등 구조적 여건 조성 못지 않게 선수들의 능동적인 자기계발 노력도 요구된다. 2005년 KFA등록 심판 656명 가운데 선수출신은 고작 10%가 될까말까 한다. 분명 길이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회피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협회 심판실의 김정훈 차장은 "한국 선수들은 지도자에 견줘 심판을 '천한' 직업으로 백안시 하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뿌리 박혀 있다. 심판은 아무리 잘해도 누군가에게 욕먹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강하게 배어있다. 그래서 지원 자체를 꺼리는 것이다. 나 또한 10여 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해봐서 그 심리를 잘 안다"고 대변했다. 그야말로 난관 넘어 난관이다.

그러나 KFA경기국 소속으로 최근 등록업무를 전담하는 박진후씨는 되레 희망론을 펼친다. "정원 때문에 대학 가기 어렵다는 말은 이제 그만 해도 좋을 듯 하다. 요사이 선수 등록을 하는 대학생 숫자가 예년에 비해 현격히 증가했다. 전반적으로 각 대학의 모집 정원이 늘어난 데다 축구선수들이 입학할 수 있는 학과도 눈에 띄게 많아진 덕분이다. 지방의 어떤 학교에는 축구학과가 따로 있을 정도다. 등록 마감 날짜가 아직 남아있어 정확한 숫자를 언급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최소 1,000명은 될 것으로 예측한다.

특히 2년제 대학들의 선수 모집 규모는 기대 이상이다. 4년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고, 또 프로진출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기만성하는 예도 더러 있으니까... 실제로 근래에는 2년제 대학에서 4년제 대학으로 스카우트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지난해에도 30여명이 그런 방식으로 4년제 대학에 편입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놓일지언정 희망은 붙잡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끝으로 이의수 여자축구연맹 회장의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인다. 참고로 이 회장은 고2때 축구를 그만둔 후 자력으로 일반대학에 진학, 새 인생 설계에 성공한 인물. "시스템이 문제라면 한번쯤 스스로 해법을 연구해 볼 것을 충고한다. 환경 탓만 해봐야 소용없다. 10대 후반까지 축구선수로 활동한 내가 고3때 단 1년 공부하고도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꾸준한 독서에 있다. 운동하는 틈틈이 책을 읽으면 훗날 그게 다 재산이 된다. 영어 수학도 함께 공부할 것을 주문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진 않을 것이다. 재차 말한다. 독서를 하라. 그리고 항상 내일을 고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