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시네리포트] 전주국제영화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국제영화제 중에서 부산과 함께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영화제가 전주국제영화제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 영화를
대표하는 창구로서 자기정체성을 확립했다면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영화제로서 성격을 뚜렷이 하고 있다. 주류 상업영화 시스템에서는 절대 만나볼 수
없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영화들이 전주국제영화제에는 가득하다.
지난 4월28일 ‘디지털 삼인삼색’을 개막작으로 출발한 제6회
전주국제영화제는 8일 폐막작 ‘남극일기’를 끝으로 9일 동안의 영화 여행을 마치게 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다른 어느 해보다도 폭발적인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주말 이틀 동안은 전국에서 몰려든 관객들이 티켓 전쟁을 펼쳐야만 했다. 미처 예매를 하지 못한 관객들은 벼룩시장에
나오는 인터넷 반환표를 구하기 위해 매표소 주변을 서성거렸다.
지난해와 달라진 관객들의 분위기는 프로그램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를 둘러싼 가장 심각한 문제는,전주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대안 영화제라는 컨셉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수적이고
전통 지향적인 전주 시민들과 급진적이며 대안적인 낯선 영화들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보였다. 그러나 올해는 ‘영화보다 낯선’같은
전위적 섹션의 영화들을 축소하고 ‘영화궁전’처럼 대중 지향적인 영화들을 많이 내놓음으로써 시민들이 훨씬 더 친근하게 영화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또 ‘시장님과 함께 영화보기’ 등 지역의 정치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이 함께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이벤트들이 좋은 호응을
얻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영화제가 가끔 불협화음을 내는 이유는 서로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영화제의
예산을 확보하고 행정적 지원을 하는 지자체 중심의 조직위와 영화제의 프로그램을 확정하고 행사를 집행하는 영화인 중심의 집행위는,시민과
영화관객이라는 상이하면서도 동일한 대상의 압력을 받는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문화시장으로 불리는 김완주 전주 시장이 집행위에
최대한의 자유를 불어 넣었다는 것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돋보이는 기획은,북아프리카 영화들을 모은 마그렙 시네마
특별전과 소마이 신지 회고전이었다. 특히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튀니지 영화 8편은,우리에게는 낯선 북아프리카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카르타고 국제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누리 부지드의 ‘재의 인간’은 아랍 사회의 억압적 권력에 도전하는
인간들을,압델카데르 라그타의 ‘러브스토리 인 카사블랑카’는 여성의 성해방이라는 금기의 영역을 각각 다루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마그렙
영화의 대표격인 알제리의 영화들이 정치적 불안으로 누락되었다는 것이다.
80년대 일본 독립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감독이었던 소마이
신지의 대표작 8편은,‘자유 독립 소통’이라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신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영화들이었다. 특히 ‘태풍클럽’‘숀벤 라이더’처럼
청소년기의 주인공들이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내용은 비타협적 형식과 맞물리며 역동적 활력을 만들어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영화제의 미래를 계획하고 집행하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지자체와 전주의 시민단체,영화인들이 의견을 모아 장기플랜을
세우고 확고한 의지로 집행해 나가야 한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영화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이제 전주국제영화제는 하나의
분수령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나온데 | 국민일보 2005년 5월 3일
*참고: 전주국제영화제 2005 http://www.jiff.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