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전철을 타고 여행한다는 게 좀 뭣하긴 하다.
이를테면 ‘밤으로의 긴 여행’처럼
기차를 탄다거나,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낮선 시골길을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게 여행의 참맛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질과 맛이 달라진다는 게 떠돌이 생활에 이골이 난 사람들의 공통견해이다.
빠르고 편한 교통수단이 가장 훌륭한 여행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여행목적에 따라 교통수단도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풍물을
체험하기 위해 시간을 넉넉하게 잡은 여행이라면, 역시 기차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좋고, 단시간에 특정한 목적으로 하는
여행에는 자가용이나 비행기를 타는 것이 효율적이다. 시골길을 탐방하는 데에는 걷는 게 제격인 것처럼.
한데, 전철을 타고 여행을
하다는 건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색하기만하다. 이를테면 전철은 출퇴근을 한다거나,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이용하는 도심교통수단으로 만 생각이 박혀있어서다.
그런데 그런 전철을 타고 서울에서 충청도 땅인
천안일대를 돌아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전철은 전기로 움직인다 해서 불리는 이름이지만, 정식명칭은 도시철도라고 하는 것 같다. 말 그대로
도시에서 철로를 따라 움직이는 기차인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은 지하철인데, 사실 이 명칭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하긴
우리나라에는 지하도를 따라 운행하는 도시철도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하구간만 운행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하철이라고 하는 건 일부만
맞는 셈이다. 또 이미 서울지방의 전철은 서울과 이웃도시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된지 이미 오래여서 도시철도라는 명칭이 어울리기도 한다.
서울과 경기도, 인천직할시를 잇고 있는 전철이 지난 1월에는 영역을 넓혀 충청도까지 이어졌다. 이른바 중부권 광역전철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서울과 수원을 이은 지 31년 만에 우리나라 전철역사에 새로운 페이지가 추가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침 9시30분,
개찰구에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갔다대고 천안을 향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생활화 된지 오래건만 이날의 느낌은 달랐다.
전철에 앉아서 천안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퍽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긴 천안과 서울을 매일이다 시피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기차나 정기버스를 이용한 경우이고 이렇게 전철로 할 수 있다는 게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조간신문을 대충 흩어보는 사이
전철은 서울시내 지하구간을 빠져나와 한강철교를 건너고 있었다. 개통 첫날이어서 축제분위기가 꽤 느껴지리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기껏해야
좀 큰 역구내에 걸려있는 서울~천안 연장개통 축하현수막이 걸려있는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서울권을 빠져나오자 서있는 승객이 없을
정도로 차내가 한산해 졌다. 승객 대부분도 무료승차를 할 수 있는 노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개통 첫날 구경삼아 일찍부터 서두른 게
분명하다.
서울역에서 천안까지는 100km에서 3km가 빠지는 97km. 그동안 수도권 전철은 서울~병점 까지만 운행이 가능했다.
그러던 것을 병점에서 천안까지 47.9km를 연결하기 위한 공사를 시작한 것이 지난 96년부터이다. 약 1백 여리의 구간에 복복선 철로를 놓는데
걸린 기간은 9년.
전철 안에서 벌어진 농악대 자축연
수원을 벗어나면서 너른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도회지구간을 벗어났다는 느낌이 완연해진다. 밖의 기온은 영하 8도라지만 전철 안은 두꺼운 외투가 성가실 정도로 덥다.
“할머님들 어디가시는 길이세요?” “지하철타고 천안으로 호두과자 사먹으러 가지요.” 마침 옆자리에 할머니 서넛이
웃음꽃을 피우고 있어 물었더니 이구동성이다. 무임승차로 시간 보내는 셈 치고 천안까지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오산-송탄을 지나 서정리역에 닿았다. 한 떼의
사람들이 문을 비집고 들어섰다. 농악패거리들이 개통축하 나들이에 나선 것이다. 북과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어 제킨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상모돌리기가 한창이다. 앉아있던 승객들도 뒤질세라 어우러져 춤판을 벌인다. 그제 서야 잔칫날 같다. 역시 이런 날은 떠들썩해야 제격이다. 넓은
농토를 자랑하는 고장답게 농악대를 동원한 자축연이 전철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한바탕 잔치판을 벌인 농악패거리들은 다음 역에서
내렸다. 천안에서 서울로 가는 전철 안에서도 자축연을 벌일 게 분명하다.
서울~천안을 운행하는 수도권 전철은 하루 170회씩
왕복한다. 그 가운데 일반전철은 140회이고 급행은 30회 운행한다. 급행열차는 서울과 천안을 80분에 달린다. 출퇴근 때 일반전철은
10분 간격으로 배차되고 그밖에는 14.2분 간격으로 다닌다.
요금도 여느 교통편보다 싸다. 급행이나 일반전철의 요금은 모두
2300원.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100원이 싸진다. 이 같은 요금은 고속버스(4200원)나 무궁화호 열차(5400원) 등에 비해 절반이나 2/3
수준이다.
이 전철은 서울과 천안뿐만이 아니라 내년(2006년)말경에는 온양까지 연결된다. 서울과 동일 교통권역으로 묶여진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선 서울의 배후도시로서 오산과 송탄, 평택, 천안은
물론 아산과 아산 신도시권도 수도권 전철 수혜지역으로 편입돼 기능이 배가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수도권 밀집현상을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북부권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도시의 상권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의 지역상권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과의 교통이 더 용이해져 그나마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지적이다.
인적으로나 물적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점에서
서울과 지방의 동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여러 면에서 인프라가 빈약한 지방 도시로서는 서울과 경쟁관계에 놓인다는 것 자체가
불리한 게 사실이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점에서 기간 교통시설의 확충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아직도 ‘서울 쏠림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방도시의 불리함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또 교육이나 문화면에서 수도권 종속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한 시간이 조금 넘자 전철은 평택-성환을 지나고 있었다. 이제 서너 정거장만 지나면 종착역인 천안에 닿는다. 곡창지대답게
철길 양옆으로는 평야가 펼쳐져있다. 정말 서울과 천안간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울까 싶을 정도로 어느새 온 것이다.
사람은 성장정도에
따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하긴 열 살 때 본 것과 스무 살 때 본 것이, 서른이 되어서 돌아보면 사뭇 다르다는 걸 살아가면서
느끼게 된다. 어릴 적 고향집 앞마당이 그리도 넓게 여겨졌었는데, 어느 날 어른이 되어 대문 열고 들어선 마당은 거의 손바닥 만하게 보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지 않는가.
전설적인 거리, 천안삼거리는 그 옛날 삼남지역의 갈림길이면서 교통의 요지에 물산의 집산지였다.
한마디로 한양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중추적인 대로의 초입에 해당하는 번화가였다.
그렇긴 해도 거기서 한양까지는 부지런히 걸어도
이삼일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생기면서 교통중심지로서의 역할은 대전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천안은 그 옛날 흥에 겨운
추억속의 삼거리만을 남기고 침잠했다.
인근의 온양이 온천관광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을 때도 천안은 그냥 거쳐 가는 도시 정도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아산과 아산신도시가 터를 잡자, 천안은 그 일대의 변방으로 남아있을 뿐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참여정부가 충청지역에
신행정수도건설계획을 발표하고 입지까지 선정되자 천안은 역시 조금은 외진 곳으로 취급되었다.
충청도까지 광역수도권 편입
그러던 천안에 서울전철이
닿는다니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온양과 아산신도시까지 노선이 연결되고, 미구에 아직은 설계도가 확실치 않지만 신행정수도가 인근에
세우지면 필경 천안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정부가 신행정수도건설계획을 밝혔을
때, 이와 연계해서 수도권전철의 연장운행과 그 효과에 대해 좀 더 비중 있게 홍보를 했었다면, 대국민 설득은 물론 헌재의 판단에도 정부의 의도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행정수도 건설예정지로 꼽혔던 지역과 천안은
멀지 않은 곳으로 역시 전철의 연장운행이 가능한 곳이다. 천안의 지선으로 연결되면 기존의 수도인 서울과 쉽게 연계된다는 점에서, 이른바
광역수도권으로서의 행정수도의 기능이 보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 질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지금이라도 서울이 갖는 중요한
기능을 빼앗아가는 식의 신행정수도가 아니라, 기간 교통망과 하시라도 연결되는 지역으로 수도의 기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새 도시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전철이라는 대중교통 매체의 특성은 도시인에게 있어 근접성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편리하고 정확하고 안정하다는 게 차례로 거론된다. 만약 행정수도가 충청권에 생긴다면, 서울사람들은 우선 불편하게 여길게 분명하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거기까지 전철이 다닌다고 하면 거부감이 훨씬 덜할 것이라는 느낌이다.
종착지인 천안역은 들떠있었다. 새로 지은 역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취재진들이 하차한 승객들을 붙들고 인터뷰를 청한다.
“너무 빨리 와서 어리둥절 하네요.”
“전철타고 천안까지
오시니까 어떠세요?” “참 편하고 좋은 데, 좀 어리둥절해요. 너무 빨리 와서 그런가 봐요.” 여자리포터의 질문을 받은 젊은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하는 말이다. 하긴 다른 승객들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 역력하다.
역 광장에는 기념식을 하기 위한 천막이
설치되어있고, 천막 안에는 영하의 추위를 녹이는 난로가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천안은 지난 63년에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쳐
천안시가 된 후 95년에 이르러 천안군과 천안시가 통합되어 천안시로 커졌다. 천안은 전형적인 도농복합형 도시로 4개읍과 8개면, 13개
행정동으로 이루어졌다. 인구는 약 45만 명.
천안에는 학교가 많다. 대학만 해도 8개교에 이른다. 서울에 본교가 있는 대학들이
이곳에 천안 캠퍼스를 가지고 있어 차츰 대학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전철연결로 이들 대학들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독립기념관이 들어서있는 고장이고 유관순 열사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이순신장군을 기리는 현충사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천안의 명물은 뭐니 뭐니 해도 호두과자. 주원료로 쓰이는 호두가 바로 광덕·풍세면에서 생산된다. 천안지역의
주요산업은 과수재배와 축산업이다. 그밖에 성환과 입장천 등 유역을 중심으로 한 논농사도 활발하다.
구릉지대를 이용한 과수단지와 낙농단지가 들어서
있으며 배, 포도, 호두, 밤 등이 많이 나오고 젖소와 한우사육도 활발하다. 근년에 들어 유기농이 새로운 농법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의 유통이 보다 활기를 띌 것으로 기대된다.
천안까지 간 김에 온양온천을 외면하고 올 일이 아니다. 온양온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요즘에야 온천 없는 동네가 없을 정도로 흔해졌지만, 7,80년대까지만 해도 온양은 국내 최고의
온천동네 였다. 지금도 당시의 영광의 흔적이 거리 곳곳에
남아있지만, 예전만은 못하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던 차에 천안까지 서울전철이 온다니, 옛 추억을 그리는 사람들이 겸사겸사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찾지 않을까하는 기대에 차있다. 천안 전철역에서 온양까지 기차가 수시로 있다. 버스를 이용해도 30분도 채 걸릴지 않는다.
온양에는 명성에 못지않은 질 좋은 온천탕이 성업 중이다. 주변의 먹을거리도 많다.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가까이 있는 음식점에서
별미를 맛보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겨울철이면 그 고장에서 나는 콩으로 띠운 청국장이 입맛을 돋운다. 값도 싸고 양도 푸짐해서 객지사람들이 찾을
만하다.
집 앞에서 지하철에 올라 얼마 후 천안의 풍물을 감상하고, 온천욕과 소박하지만 정겨운 우리네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전철여행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경기지역의 너른 평야 너며 지평선으로 기우는 장엄한 일몰의 순간을 감상하는 것도 복잡한 도회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김두용 /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