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얘길 들어 보세요 ..
11월에 청도 운문사엘 갔었답니다.
하늘에선 간간히 빗방울이 흩날렸고
낙엽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이미 땅 끝으로 숨어 들어간지 오래였었지요.
운문사위 사리암으로 가는 산행 길에
조금씩 지쳐 가는 소리들 ..
누군가 갑자기 "야!" 하는 탄성 ..
고개 돌려보니 ..
'학산' 산비탈에 마지막 타다 남은 잎새들
고운 빛으로 퍼져 그곳에 있습니다.
혼자 속으로 ..
"예쁘다.. 참! 예쁘다.. 당신을 닮았구나"
그곳.. 운문사에서 전 또 그렇게 그댈 만났지요
제 얘길 들어보세요
11월, 운문사위 사리암 가는 길에 ..
"이별이란 둘이서 하는 가보다.
이 땅 어디에서든 이렇게 그대 닮은 모습 보며
그댈 만나고 말을 걸고, 사랑을 하는데 ..
그대는 나와 이별을 했어도
아직 나는 그대와 이별을 못했구나 .."
하는 .. 그 사실 하나 깨닫곤
사리암 관세음보살께
그대 안부 뒤에서 빌었던 적, 있었습니다.
11월, 낙엽도 울다 지쳐 잠든
운문사위 사리암 가는 길에 말입니다 ..
[since 1112,03 .. 운문사, 사리암을 오르며]
일탈을 꿈꾸는 자의 마음 터 [운문사 이야기, 둘]
팀원 몇몇과 경산에 출장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된 일은 넉넉함의 시간을 덤으로 준다.
어차피 회사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개김의 아우라를 보유한
그들이었기에 이렇듯 무방비로 주어진 쾌재의 시간을 그저
넘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 어이.. 박계장 .. 내려갈 땐 우리 국도로 향해 가자
= 네 .. 그라입시다!
일행 중 최고참인 김과장의 추상같은 말씀을 어찌 거역하리오
내려가는 길의 운전을 책임진 박계장은 벌써 핸들의 방향을
국도로 향하고 있었고 남은 우리는 고속도로 길보다 한 시간
하고도 몇 십분은 더 걸릴 국도길의 시간을 가늠하곤 남겨둔
회사의 태산 같은 일거리들을 무척이나 우려(?)하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류계장.. 니 조은데 마이안다 아이가.. 이 근처에 머 음나?
= 조은데요?
- 어차피 회사드가믄 두어시간 앉아있다 퇴근할낀데 일되긋나?
그냥 두어시간 어디 바람이나 쑀다 가자
고참의 앞을 보는 통찰력은 위대한 것일까.. 속으로 김과장의
이런 깊은 안목에 경탄을 마지않으며 잠시간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을 생각하다가 ..
= 과장님 .. 글로 가믄 되겠네예
- 오데로?
= 운문예.. 어차피 청도 글로 해갔꼬 밀양넘어 갈 꺼 아입니꺼
- 그 머, 볼 끼 있나?
= 하! 참 내.. 운문사 있다 아입니꺼! 운문사!!
벌써 천년은 되었을 터인데.. 청도 어딘 가엔 삶의 일탈을
꾀하는 자들의 마음추스림 터가 있어 그 오랜 시간 운문이란
이름으로 소문자자하건만 아직까지도 이를 몰라 되묻는 우리
김과장께서는 그 월매나 충직한 삶으로 달려오셨단 말인가(?)
일탈도 아니, 땡땡이도 해본 놈들의 전유물이라니 안타까운
일이고 억울한 일일법도 한지라 내 오늘 기꺼이 이 일탈의
선봉자가 되어 이들을 선도하리라 조금은 비장하기까지 한
마음을 굳게 다져 묵으며 차 창밖으로 고개 돌리니
잠시, 순간.. 흐르는 운문댐 물줄기가 가슴으로 넘쳐 고인다.
다시 이 길을 거닐다 [운문사 이야기, 셋]
3년 전 스산함이 치닫던 11월의 어느 날 이 길을 홀로 걸었다.
운문사의 들어서는 입구에 놓이어진 이 아늑함의 돌담길을
누군가는 봄에 거닐어라 이르고 또 누군가는 겨울에 거닐어라
이르기도 한다.
봄이면 이 길은 아찔한 벚꽃길이 열려 말로 다 못할 황홀함에
취할 것이고.. 겨울, 함박송이 나리는 어느 날이면 은백색의
거울 같은 맑은 순결함에 취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길을 가을의 끝자락에 거닐어라 재 권유하여
이제껏 그곳으로 향하는 이들의 혼란을 다시 가중 시켰다.
11월, 모든 것들이 제가 태어난 그 곳으로 귀환하는 몸짓이
한창인 그 날에 오직 홀로서 이곳을 거닐어 보라 했었다.
발밑으로 바스락거리며 삶의 마지막 비명을 여운처럼 남기는
그것들의 일생을 그저 온몸으로 휘감으며 슬퍼하라 했었다
하지만 누구 무어라 하건 침묵하며 드러누운 이 길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묵묵히 순례자들의 발길을 담는다.
내가 다시 이 길을 거니는 지금은 분명 여름의 초입일 것이고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제껏 주워듣고 내 뱉은 이 길에
관한 무성한 풍경의 결론들을 그저 무색하게만 만든다.
나는 이제 누군가 묻는다면.. 얼마간은 푸르른 연녹빛의 옷을
두텁게 입은 유월 운문사 돌담길이 제일이라 청할지 모르겠다.
숨겨 둔 여심은 이리도 폭발하고 [운문사 이야기, 넷]
운문사에는 주어진 모든 것들이 낮음으로만 향한다.
가람의 배치부터가 낮음이고 내부의 속내를 다 드러내 놓은
무심한 돌담도 그저 낮고 돌담 옆 손수 경작한 딸기를 따던
비구승의 자비어린 미소도 낮으며 그 바람조차 낮아 발밑으로
부터 서늘히 휘돌아 오른다.
경내에 다만 유일하게 이 낮음을 거부하며 오독이 서 있는 건
일주문 겸 범종루로 쓰이는 건물 밖에 없으니 평소 낮음과
둘도 없이 친밀한 나에겐 더욱 편안하게 느껴질 뿐인 것이다.
범종루를 들어서니 사방 지천으로 아찔한 화무가 한창이다.
잠시 잊었건만 운주사는 우리나라 비구승들의 최대 도량이
아니던가.. 정진하고 매진하여 이전의 나를 버리고 깨우치는
엄중한 자기성찰의 나날일지라도 이렇듯 운주사 숨은 곳곳엔
숨겨둔 여심의 발로가 폭발하듯 피어나 감추질 못한다.
산중의 푸른 깊이가 미치질 못하여 어찌 보면 매마를 법도 한
이 평가람의 배치를 이렇듯 알록달록한 생기의 꿈틀거림으로
변모시켜 놓은 건, 그 꾹꾹 억누른 여심들의 미적인 손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정녕 의심할 여지가 없는 풍경이다.
막걸리 몇 말에 몇 천 년 아우르고 [운문사 이야기, 다섯]
구름의 문을 열고
재를 넘던 날
실비소리 가득히 산을 깨우고
숲길은 초록으로 앞섶 여미네
기다림에 늘어진
처진 소나무
처진 채로 담담한 그만의 세월이
등 굽은 어깨너머 하늘처럼 파랗다
[성수자의 詩 ‘운문사’ 전문]
운문사를 얘기하고자 함에 단연코 소나무의 사연을 빼 놓고선
더 이상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진입로로 들어선 울창한 소나무 숲의 향연은 이미 아름다움을
넘어선 장엄함이거니와(대다수의 이들이 운문사 주차장에 차를
대어 두고 그 아래로 자리한 이 소나무 숲을 무심히 지나쳐
버리기 일 수인데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나 역시
다시 간 그날은 사람과 시간에 쫓기어 담을 수 없었기에 그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경내로 들어선 입구에 수천가지 팔을
활짝 펼쳐 온몸으로 찾아온 이들을 환영하는 이 소나무들의
군왕을 만나는 일은 늘 기쁨과 환희로 그득한 일이다.
반송(盤松) .. 천년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되어 국가로부터
대접받는 귀하신 몸이나 앞서 내가 언급한 그 낮음의 겸손을
각 가지마다, 각 솔잎사귀마다 처지게 한 낮음으로 실천하여
몸소 내방객을 숙여 맞으니 어느 교만한 이가 있어 그 앞에서
서툰 위선과 알량한 자존심으로 뻣뻣이 설 수 있겠는가 ..
이 반송은 매년 봄, 가을이면 낙엽 떨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주변에 도랑을 파 막걸리에 물을 섞어 50말 정도를 부어
준다고 한다. 이 덕에 막걸리 먹는 소나무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무엇보다 정겨운 일은“반송”이라는 왜색 짙은 이름을
대신하여 문화재관리국에서 나무의 그 겸손한 형상을 버리지
아니하고 순수한 우리말로 개칭하였으니 그 이름이 바로“처진
소나무”이다. 이 운문사 소나무들의 군왕인 처진 소나무의
인기는 가히 대단한 것이라 운문사를 찾는 이들 중에 그의
앞에서 어색한 V자를 그리며 사진 찍지 않는 이를 나는 아직
본 적 없고 어딘가에서 운문사를 얘기할라치면 이 군왕의
존함을 먼저 들먹이지 않고서 더 이상 얘기를 진전시키는 者
또한 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유명세를 인간으로
치자면 소위 잘나가는 10대 아이돌 댄스그룹의 유명세정도는
될 듯한데(실제로 운문사 처진 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온라인 동호회가 있다) 다만 이 스타께서는 몸소
사인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과 두터운 팬층을 두었음에도
그 겸손함의 처짐이 단 한 번도 거만과 교만으로 고개 든 적
없었음이 우매한 영장류의 스타와 작은(?) 차이일 것이다
아! 언젠가 이 연초록의 삼베옷이 시려 차거워 지는 날이면
나는 운문사 처진 소나무님을 우러러 뵈며 막걸리 오십말로
그 천년 낯과 밤의 나날을 죽자고 대작할 것이다.
간직된 평탄한 것의 고마움 [운문사 이야기, 여섯]
운문사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체적으로 높낮이의 저고가
없는 평가람의 배치다. 지형학 적으론 영남의 알프스라 얘기
될 만큼 수려한 산세를 보유한 운문산과 호거산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듯 (요즘 다시 재조명 받는“학익진”과 같은
풍세라고 할까 .. 아무튼 이 형상 덕에 운문산과 호거산은
“학산“이라고도 일컫는다) 사방으로 둘러싼 그 기슭의
평탄한 중심지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풍수지리학에 무지한
이라 하여도 과히 이곳이 명당임은 쉬이 짐작이 갈 일이다.
그리고 운문사가 이렇듯 거스를 수 없이 겹겹이 쌓인 세월을
이 평탄함으로 잘 견뎌 주었기에 어느 날 내가 미륵사지를
거닐고 황룡사지를 거닐고 감은사지를 거닐어 구비의
길들을 넘나들며 그 평탄한 것들의 짐작하지 못했을 신비에
대하여 막연하게나마 옛 영화를 가름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운문사 이 평탄의 중심에서 몇 백배 절 올려 감사할 일이다
진정 평탄한 것을 간직한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 것이었나..
그 때..그대는..나는..우리는.. 그 겹겹이 굴절어린 협곡의
시간들을 지나오며 사무치도록 깨달았던 것을 말이다.
내 기행의 분신과도 같을 작은 수첩을 꺼내어 이것저것 옮겨
적으며 휘갈기던 내 손 끝이 문득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찍어
내는 정성과 고.맙.다.는 간결로서 끝맺은 건 그 이유이다
그저 운문사가 이곳에 있어.. 라는 그 이유 하나가 말이다.
운문사, 그 평가람의 사연들 [운문사 이야기, 일곱]
운문사, 평가람의 전체적인 건물들 중 단연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단층 누각인 만세루이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대웅전
앞의 누각은 이층으로 만들어 아래층을 통로로 쓰고 있는데
비해 운문사의 만세루는 단층이며 규모 또한 상당한 편이다.
원광국사가 초창 후 보양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105년에 원응국사가 3중창한 때의 건축양식이고 현재는 매년
열리는 어린이 여름불교학교, 졸업식 등 대외적인 행사 때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만세루의 범종은, 범종 위 용뉴 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몸통
부분에는 보살상 2구가 새겨져 있다-조선후기의 강당건물 중
가장 큰 규모로서 존재하니 그 약력으로도 고개숙일 뿐이다-
만세루 앞의 소박스런 작압전은 그 가려진 아름다움으로 인해
운문사를 답사하는 이들의 눈길에서 쉽사리 제외되고 마는데
만약 이 글을 접하는 이가 있어 운문사에 닿는 날이면 결단코
그런 쉬움으로 보아 넘길 곳이 아님을 인지하여 닿길 바란다.
운문사의 전체적인 가람의 규모가 크다 하여 그저 큰 것만이
이 사찰을 대변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앞서 말했듯 숨겨진 여심의 다소곳한 아름다움이
경내 곳곳 베여진 곳이며 그 베여진 아름다움 속에 비로소 큰
천년고찰로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작압전은 그
숨겨진 아름다움의 대표적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들어 작압전 내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과 사천왕석주4개
(보물 제318호) 등 실로 아름다운 보물이 있음은 굳이 얘기치
않아도 될 터이다. 하지만 나의 무진 발걸음이 아직까지 짐작
못하는 것은 작압전 속내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우러러 볼 때
밖으로 드러나는 규모에 비례해 한없이 드넓고 드높아 보이는
그 오묘한 공간학적인 신비로움에 대해 어떤 언어와 단어로도
부연할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언젠가 그대의 발걸음이
풀어갈 그 명쾌한 해답을 목 놓아 기다릴 뿐이다.
대웅보전 앞에 동·서로 우둑하게 서 있는 이 두 탑은 2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그 규모와 양식이 서로 같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론 남들 얘기하는 쌍탑이라는 다분함보단
쌍둥이 탑이라는 저 홀로의 애칭으로 부르고 싶은데 누군가가
이 무생명의 사물에 유생물의 낱말을 붙여 이를 수 있느냐
따져 묻노라면 우선은 그 생김새가 한 치의 틈도 없이 같음을
아뢰고 태어난 해의 같음을 아뢰며 또한 그 살아온 생의 파란
만장함이 같다 아뢰고 그 파란만장함이 깎고 저며 낸 지금의
주름까지 닮았노라 아뢰어 이 고매함을 어찌 무생물의
그것으로서 존하여 부른단 말이냐 되려 따져 물을 참이다.
나의 이런 애증어린 반박에 그날의 돌아선 비구승의 답보가
어쩌면 따뜻한 미소 한줌 지어주셨는지도 모를 일이고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운문사[운문사 이야기, 일곱]
이제는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되어버리다시피 한 유홍준 교수
(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는 저자의 유독한
운문사에 대한 연정이 장장 상, 중, 하에 걸쳐 장대히 기술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유홍준교수는 작금의 자리를 내어놓고
은퇴한 후면 운문사 앞에 여관이나 지어 살고프다 했는데
필자의 운문사 사랑이 오죽허면 그런 발상이 나올까 내심
그의 이러한 연심이 진실이든 아니든 속으론 찬사를 내었다
(솔직히 나의 우둔한 시각은 운문사 보단 부안, 내소사로
흘러 들어가 그 끝없는 전나무 숲길이나 쓸며 동전 줍다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 싶으다) 아무튼 유홍준은 이 운문사
답사기를 구구절절이 읊으며 다섯 가지의 운문사 예찬론을
펼쳤는데 그 첫째는 운문사엔 국내 최대의 승가대학이 있어
항상 사미니계를 받은 200여 명의 비구니 학인스님이 정진
하는 성지의 사찰이란 것이요, 둘째는 비구승들의 장엄한
광명을 여는 의식인 아침예불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셋째는 역시 앞서 언급한 운문사 입구의 찬연한 솔밭이며,
넷째는 운문사의 평온한 자리매김이고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저자가 답사기를 쓸 때면 가장 먼저 찾아본다는 삼국유사와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다는 이 책의 저작자인 일연스님이
이곳에서 그 위대한 고서를 썼다는 것이다.
간략히 얘기한 것이므로 운문사에 대해 진정 더 깊이 관심을
두고 있는 이라면 이 책(나의문화유산답사기-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을 꼭 사서 읽어 보기 바란다. 아직 운문사를 언급한
서적에 대해 미처 다 살펴보진 못하였으나 이 책에 기술된
내역이면 웬 만큼의 갈증은 해갈되어 지리라 내 개인적으론
생각하는 바이다.
立志發願, 精進不退, 流通敎海 [운문사 이야기, 일곱]
운문사는 앞서 밝힌바 국내 최대 규모의 승가대학을 가진
비구니들의 수행 도량이다. 유홍준교수가 책에서 언급하였듯
이백여명이 넘는 스님들이 매일 아침 드리는 예불의식은
엄숙함과 숙연함을 넘어 자연에 귀속된 또 하나의 장관이며
그 사백여개의 고무신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지런히 놓인
법당 앞의 풍경을 대할 때면 학훈인 입지발원, 정진불퇴,
유통교해의 결언을 그저 실천으로 대하는 것 같아 그 앞에서
합장발원 아니할 수가 없다.
한낮의 태양이 작렬 하는 이 가람의 중간에서 출입금지라는
팻말 너머로 두 비구승께서 사뿐한 소곤거림이 한창이시다.
조금은 앳되어 보이심에 사미니과(1학년) 아니면 사집과
(2학년)일까.. 홀로서 무궁한 상상을 하다가 3년 전 초겨울
이른 아침에 접했던 아침 예불의 끝자락을 잠시간 떠올리곤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마음속 가벼이 축원 한 소절만 올린다.
부디 성불하십시오 .. 스님 ..
강남 갔다 다시 올 때쯤이면 [운문사 이야기, 여덟]
운문사의 짧은 일탈의 시간은 이제 조금씩 저물어 간다.
벌써부터 나의 뱃속은 속세의 아귀를 담았는지 연신 꼬르륵
꼬르륵 울리어 대고 그제야 경내로 들어설 적부터 헤어져
여즉까지 그 행방이 묘연한 동료들을 찾았다.
평 가람의 경내를 몇 번을 헤집고서야 이 양반들의 휑한
발걸음이 진즉부터 하산하였음을 알게되곤 그저 그 조급함에
대고“역시 땡땡이엔 급이 있는 법이여”라며 나를 위로한다.
일탈을 행하자 시발한 것은 그들이나 그려도 복귀 후 현실에
놓인 일거리들의 걱정과 어쩌면 토끼 같은 새끼들 얼굴마저
애꿎게 떠올랐는지도 모르겠다. 뭐 이 고수 땡땡이 놈께서는
그것조차 일탈이려니 내려가는 길에 산채 비빔밥에 동동주나
한 사발 들이키고 가자 다시 바락 바락 우겨 댈 일이겠지만..
문득 대웅보전을 벗어나며 마지막으로 눈 부친 처마 밑에
강남 같다 언제 왔는지 보금자리 잡은 제비 일가족의 애틋한
날개 짓과 부르짖음이 한창이다.
물어다 나르고 .. 받아먹고 .. 물어다 나르고 .. 받아먹고 ..
그 헤아릴 수 없이 무조건식으로 되풀어 가는 그네들만의
방정식과 함께 봄날의 운문사가 사랑땜으로 영글어간다.
봄날이 그렇게 가고.. 내 마음이 그렇게 강남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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