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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과 부록-안도현

여여니(여연) 2005. 7. 22. 17:45

 

불혹과 부록

 

마흔 살을 불혹이라던가
내게는 그 불혹이 자꾸
부록으로 들린다 어쩌면 나는
마흔 살 너머로 이어진 세월을
본책에 덧붙는 부록 정도로
여기는지 모른다
삶의 목차는 이미 끝났는데
부록처럼 남은 세월이 있어
덤으로 사는 기분이다
봄이 온다
권말부록이든 별책부록이든
부록에서 맞는 첫 봄이다
목련꽃 근처에서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마음이 혹할 일 좀
있어야겠다

강윤후 시인의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이라는 시입니다.
마흔을 앞두고 있거나, 마흔을 막 통과한 분들은 이 시의 쓸쓸함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불혹에서 부록으로 건너가는 즐거운 말장난, 그것을 가벼운 유희로만 읽지 못하는 까닭이지요. 삶의 목차가 마흔 살 이전에 끝났다는 인식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겁니다. 시인이 나이를 가지고 한껏 엄살을 떨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오해입니다. 시인은 시의 뒷부분에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괜히 머뭇대는 바람처럼‘ 무엇에 좀 홀려 살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지요. 그것은 불혹 이후를 단지 부록으로만 여기지 않겠다는 안간힘, 혹은 버팅김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온데 : 2005.7.18. 안도현의 아침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