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茶한 잔에 기개 세우고 두 잔에…‘다인기행’
<동아일보 2006/6/3/토/책의향기21면>
◇다인기행/정찬주 지음·유동영 사진/384쪽·1만3000원·열림원
곡우(穀雨)절의 맑은 날, 햇차가 새 잎을 내밀 즈음이면 두륜산의 햇살은 머루 빛깔을 닮아간다. 그 두륜산 기슭 일지암에는 훗날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가 수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야생 차밭이 산재한 이곳에서 초의는 한 잔의 차를 통해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보며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로 나아갔다. 초의의 차 만드는 솜씨가 어찌나 뛰어났던지 추사 김정희는 이런 걸명(乞茗)의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어느 겨를에 햇차를 천리마의 꼬리에 달아서 다다르게 할 텐가. 만약 그대의 게으름 탓이라면 마조의 고함(喝)과 덕산의 방망이(棒)로 그 버릇을 응징하여 그 근원을 징계할 터이니 깊이깊이 삼가게나.”
이 책에는 고운 최치원에서 춘원 이광수에 이르는 우리 역사 속의 다인(茶人) 50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차 마시는 우리 조상들의 향기로운 역사이자, 차의 성품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기다. 저자는 차를 기른 땅과 비와 햇살과 바람의 인연을 고마워하며 “한반도 그 어디에도 차향이 스미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한다.
차나무와 선가의 인연은 깊다. 조주에서 발원한 승가의 다맥(茶脈)은 신라 때 철감선사에 의해 해동으로 건너와 고려 때는 보조국사와 진각국사가, 조선 때는 함허선사와 사명대사에 이어 초의선사가 중흥시켰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차 한 잔의 의미는 선가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차 문화는 선승들의 수행 방편을 넘어 한국 문화의 정점에 자리한 그물코 같은 유산이었다.
최치원 이자현 김시습 허균은 차의 청허(淸虛)함을 어찌 세상이 알겠는가 하여 은둔했고, 김종직 이목 기대승 김장생 이이 송시열 윤선도는 차를 군자처럼 가까이했다. 양팽손 김정희 허백련은 차와 함께 ‘서화잠심(書畵潛心)’했고, 신숙주와 이광수는 차 한 잔에 세월의 영욕을 띄웠다.
고려 왕조의 지조를 지켰던 ‘삼은(三隱)’이 모두 다인이었던 것도 흥미롭다. 사철 푸른 차나무는 굳이 척박한 땅을 골라 자란다. 뿌리가 곧게 뻗는 ‘직근(直根)’의 성품을 지녀 옮겨 심으면 쉬 죽고 만다고 했으니, 그것은 선비의 꼿꼿한 기개였던가.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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