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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설악산 신흥사

여여니(여연) 2010. 10. 27. 15:05

신 흥 사 

 

설악산 신흥사는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사천왕문앞의 전나무

 

처음의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사천왕문의 사천왕석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 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범종루

 

 

 

 △극락보전

 

신흥사는 대웅전이 없이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을 본전으로 두었다.

극락보전은 조선 인조 25년 영서, 연옥, 혜원 등 세분의 스님이 창건하였고,

영조26년 순조21년 에 중수하였고 최근에 1977년에 보수하였다.

 

 

 

명부전

 

 

 

 △삼성각

 

 

 

 △신흥사 요사채

 

 

 

  

 △계조암에서 바라보이는 하얀 속살을 드러낸 울산바위

 

 

설악에 올라 계조암을 물었더니

 

바위돌을 가리키며 바위 속에 있다 하네

 

둘러 보면 모두가 바위 뿐이네

 

바위속에 들어 앉아 바위굴을 찾느냐고

 

고사목이 우지끈 죽비를 치네

 

 

<계조암/ 장인성>

 

 

 

 

                            

△절집답게 점잖게 잠지바우라 부른다고 합니다~ㅎㅎ

 

 

 

 

 △계조암과 흔들바위

 

계조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산내암자로 신라시대인 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니 1300년을 훌쩍 넘긴 고찰이다.

 

절 이름이 계조암(繼祖庵)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당대의 최고 선지식인으로 조사(祖師)의

칭호를 받은 동산, 각지, 봉정에 이어 의상대사, 원효대사 등이

 법맥이 끊이지 않게 계속하여 수행을 하였던 도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도량에서 10년 공부할 것도 계조암에서 하면

5년이면 끝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행발이 잘 먹히는 곳이란다.

 

 

 

                     

  △신흥사 통일대불

 

 석가모니 부처님을 형상화한 이 청동대불은 좌대높이4.3m, 대불높이14.6m,

좌대직경13m 아파트 6층 높이에 108톤의 청동이 사용되었다.

 

 8면의 좌대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십육 나한상이 새겨져 있으며, 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다라니경, 칠보등 복장유물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뒤로 들어가면 넓은 법당과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신흥사 일주문

 

 

 

 

신흥사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 삼층석탑과

 

 그 밖에 순조의 하사품인 청동(靑銅)시루와 범종(),

 

경판() 227장, 사천왕상() 등이 있다.

 

 

 

 

 

 

 

 

 

출처 : 성지순례 봉찬회
글쓴이 : 원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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