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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할 줄 아는 사람 -안도현

여여니(여연) 2005. 12. 23. 17:02

 

감동할 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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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시인 한 사람은 말 첫머리에 꼭 감탄사를 붙이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 시인을 처음 만나는 사람은 감탄의 횟수가 너무나 잦은 그이의 말버릇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지요. 남들이 그저 덤덤하게 여기는 일조차도 그이는 매우 감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참 맛있구나.”
늘 밥상에 오르는 김치 한 조각, 콩나물국 한 모금을 먹더라도 그이는 감탄하는 말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궁핍한 시절에는 귀했지만 지금은 잘 먹지 않는 음식들, 이를테면 삶은 감자나 고구마, 보리개떡, 인절미, 수제비 같은 것들이 앞에 놓여 있어도 그이는 분명 행복한 표정을 지을 게 분명합니다.  


“야, 맛이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걸.”
그이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이의 사소한 말 한 마디 때문에 별로 차린 게 없는 밥상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은근히 풍성해지고 입맛이 돕니다.


“어? 이 국물에 머리카락이 하나 빠져 있네.”
누군가 밥을 먹다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다른 사람마저 혹시나 싶어 국물을 숟가락으로 뜨기도 전에 마음이 찜찜해지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앞에 두었더라도 제 그릇 속을 살피느라 그날의 식사시간은 개운하지 않을 게 뻔합니다.


이 세상은 내가 감동해야 다른 이도 감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요?

*나온데 : 2005.12.23  안도현의 아침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