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편지명시명언

보름달-안도현

여여니(여연) 2005. 6. 28. 14:19

 

보름달

 

어느 애벌레가 뚫고 나갔을까
이 밤에 유일한 저 탈출구,

함께 빠져나갈 그대 뵈지 않는다

 

 


박성우라는 젊은 시인의 시 '보름달'입니다.

길게 주절주절 늘어놓을 것 없이 단 세 줄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지금 어둠 속에 혼자 있습니다.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고요. 둥근 달을 보며 화자는 애벌레의 통통한 몸을 연상하고, 이내 달을 애벌레가 뚫고 지나간 구멍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놀라운 발견입니다. 바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시에 이르는 길이지요. 그런데 화자 자신이 어둠 속에 갇힌 애벌레임을, 함께 애벌레로부터 벗어날 사랑이 옆에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 상황을 아프게 노출시킵니다. 애벌레란, 날개를 갖기 전 나비의 몸입니다. 이제 이 시의 화자가 꿈꾸는 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는지요? 애벌레의 우화(羽化), 즉 나비의 날갯짓 같은 사랑 아니겠는지요?

 

*나온데 : 2005.5.27 안도현의 아침엽서(국정브리핑)

 

'유머편지명시명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일속 하트 -안도현  (0) 2005.07.20
늦은 후회-사랑밭 새벽편지  (0) 2005.07.11
신경림의 '농무'- 안도현  (0) 2005.06.17
박지성의 발-유상연  (0) 2005.06.09
작은 손-유상연 [펌글]  (0) 200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