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서재&작업실] 조계종 대석스님
<경향신문 2005/4/28/목/사람과사람14면>
지난해말 조계종은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스님)가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완전히 이뤄냈다고 발표했다. 대장경 전산화를 시작한 지 10년 만의 역사적인 이 일에 언론은 일제히 주목했다.
“팔만대장경엔 고려시대에만 쓰이던 글자들이 많아요. ‘이체자’라고 하는데, 그걸 프로그램으로 짜넣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상용하는 한자가 4,888자인데, 대장경에 있는 이체자만 3만자거든요. 결국 5년 전 ‘고려대장경 이체자전’을 만들어낸 후, 그것을 정자본으로 바꾸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전남대 물리학과를 졸업하던 1987년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청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대석스님은 속명을 법명으로 그대로 쓸 정도로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런 스님이 어떻게 컴퓨터처럼 아리송한 물건에 흥미를 갖게 됐을까. 스님은 선방에서 참선수행 중 상기(수행도중 열이 뻗쳐올라 머리가 아픈 현상)가 들어 쉬고 있던 93년 누군가 절에 기증한 컴퓨터를 처음 봤다.
“검은 화면에 뭔가 깜빡이는 것이 신기하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물어 컴퓨터 책 사다가 3번 읽으니까 좀 알겠더군요. 점점 재미가 있기에 아예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어요.”
하지만 94년 조계종에서 일어난 법난으로 스님은 학교를 편히 다닐 수 없었다. 그때 고려대장경연구소장 종림스님이 대장경전산화 작업을 함께 하자며 찾아왔다.
“10년간 8만1천2백58개의 경판 양면이니까, 16만2천5백16면을 입력한 거죠. 1,000쪽 가까운 이체자 자전까지 만들어가며, 3번에 걸쳐 교정을 본 끝에 일본이나 중국, 어디에서도 한 적이 없는 작업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한 것은 아니에요. 계속 보완을 해야지요.”
지난해 이 작업이 일단락되자, 스님은 기다렸다는 듯 전남 곡성 성륜사로 떠나가 버렸다.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님에게 SOS를 치지만, 휴대폰이 없는 스님에게 제대로 연락이 닿지 않아 끌탕하기 일쑤다.
“컴퓨터나 인터넷은 참 불교적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수많은 업을 쌓잖아요. 당장은 드러나지 않지만, 어떤 조건을 만나면 그 인과응보는 나타나게 마련이에요. 그런데 인터넷도 그 실체는 없는데, 어떤 조건을 쳐넣으면 전기신호를 통해 그 결과가 수만개 뜨잖아요?”
지금은 팔만대장경을 디지털 영상으로 만들어 전산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해인사에서까지 SOS를 보내는 통에 맘 편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행할 시간이 없다며 올 가을에는 아예 토굴로 공부하러 떠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불교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하룻밤 쉴 수 있는 사찰 27곳 (0) | 2006.02.27 |
---|---|
고대 조각·그림으로 만나는 '붓다'-신간소개 (0) | 2006.02.23 |
한국불교개관_PAS (0) | 2006.02.15 |
조계종 영문사이트 열어 (0) | 2006.02.14 |
만행의 길 떠나는 스님들_동안거해제 (0) | 2006.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