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

남양주시 봉선사

여여니(여연) 2006. 3. 27. 11:52

서울 도심 이웃한 천년고찰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운악산 기슭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1996 2월에 개원한 강원인 능엄학림을 두고 있다.

절이 들어선 운악산은 예부터 한국 5대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산이다. 동으로 금강산, 서로 구월산, 남으로 지리산, 북으로 묘향산, 그리고 가운데 운악산이라고 했다.

봉선사는 또한 그 주변경관이 빼어나 늘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곳이다. 절과 이웃한 곳에 조선 세조임금과 왕비를 모신 광릉이 있고, 이곳을 뒤덮는 우거진 수목과 크낙새 등 희귀조들이 빼어난 장관을 연출한다.

고려 969(광종20) 법인국사 탄문스님이 창건하여 운악사(雲岳寺)라 하였으며, 조선 1469(예종1) 세조임금의 비 정희왕후가 광릉의 세조를 추모해 89칸 규모로 중창하고 봉선사(奉先寺)라 했다. 1551(명종6)에는 교종의 수사찰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시험을 치르기도 하였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기관 역할을 하였다.

1592(선조25) 임진왜란과 1636(인조14) 병자호란 때 불탄 것을 1637년 계민선사가 복구했다. 1950 6·25전쟁으로 16 150칸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그뒤 1956년 주지 화엄이 범종각을, 1963년 운경·능허 두 선사가 운하당을, 1970년 주지 운허 용하스님이 큰법당을 복원했고, 1977년 주지 월운스님이 개건당을 새로 짓는 등 복원불사가 계속되어 지금에 이른다.

주요 건물로는 큰법당, 관음전, 지장전, 삼성각, 조사전, 청풍루, 방적당, 운하당, 개건당, 다경실, 판사관무헌, 동별당, 서별실, 선열당, 회랑 등이 있다.

지정문화재로는 보물 제397호인 봉선사대종을 비롯해 봉선사괘불(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5) 등이 있다.

 

 

주요 전각들

 

 

 

1. 큰법당: 현재 법당은 1970년 운허스님에 의해 3창되었다. 한국 최초로 한글현판을 달았으며, 내부 3면벽에는 한글 화엄경과 한문 법화경을 새긴 동판이 걸려있다.

2. 관음전: 6·25전쟁으로 불탄 것을 1999년 복원했다.

3. 지장전: 예전에는 어실각(御室閣)으로 세조임금과 정희왕후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었다. 1999년 복원하여 지금은 지장전으로 사용된다.

 

4. 삼성각(三聖閣): 1926년 월초스님이에 의해 건립되어 6·25전쟁 때 불타지 않은 유일한 전각이다. 칠성탱과 독성탱, 산신탱을 모셨다. 건물 정면에는 ‘北斗閣’ ‘獨聖閣’ ‘山靈閣’의 현판을 달았으나 일반적으로 삼성각으로 부른다.

5. 조사전: 1977년 지어 개건당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조사전으로 조성해 계민선사와 월초스님을 비롯한 근대 봉선사 조사스님들 영정을 모셨다.

6. 청풍루(淸風樓): 1985년 완공. 1층은 종무소 겸 사무실, 2층은 설법전으로 사용.

7. 방적당(放跡堂): 방적은 발걸음을 좀 자유롭게 놓아준다는 뜻으로, 스님들이 어느 단계 수행을 마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 나은 수행을 준비하는 곳을 나타낸다. 1973년 신축. 현재 스님들이 수행하는 큰방과 조실스님 주석처로 사용.

8. 운하당(雲霞堂) : 운하란 구름과 노을이라는 뜻으로 납자와 단월이 항상 구름같이 모여 복과 혜를 닦는 곳을 나타낸다. 현재 스님들 요사채로 사용. 1963년 복원했으나 근래 화재로 불탄 것을 2003년 복원했다.

9. 개건당(開建堂) : 개건이란 봉선사의 개산(開山)공덕주 정희왕후와 중건공덕주 계민선사 등을 모시기 위한 건물로, 개산과 중건의 글자를 따서 이름했다. 원래 계민선사와 정희왕후 등을 같은 건물에 모셨으나, 지금은 조사전을 따로 지어 스님들은 조사전으로, 정희왕후 등은 개건당에 모셨다.

10. 다경실(茶經室) : 차를 마시며 경을 읽는다는 뜻의 '다로경권(茶爐經卷)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1978년 운허스님 퇴로지처(退老之處)로 지은 것으로, 이 절 역대 조실스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이다.

11. 판사관무헌(判事官務軒) : 어실각으로 인해 이 절 주지는 조선왕실로부터 봉향판사(奉香判事)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따라서 봉향판사가 머물던 이곳은 이 절 주지실이기도 하다. 6.25전쟁으로 불탄 것을 1998년 복원했다.

12. 동별당(東別堂) : 1990년 복원. 원로스님들의 퇴로지실과 봉선사 불교전문통신강원으로 사용되었고 지하층은 통신강원으로 사용한다.

13. 서별실 : 1998년 복원. 현재 능엄학림 학인스님 요사채로 쓰인다.

14. 선열당 : 반지하 식당을 신축하며, 그 위에 지은 건물이다. 수좌스님들의 해제철 해랑방사(解囊房舍) 등 다용도로 사용된다.

 

 

봉선사대종 (보물 제397)

 

 

 

봉선사에 있는 조선 전기 구리종. 1469(예종1) 왕실명령에 따라 만들었다. 높이 238, 입지름 168, 두께 23. 꼭대기에는 용통이 없고 2마리 용이 서로 등지고 종고리 구실을 하는 전형적인 선종 모습이다. 종 어깨에는 2중 가로줄을 돌려 몸통부분과 구분짓고, 종 가운데는 굵고 가는 3중 가로줄을 그어 몸통부분을 상하로 나누고 있다.

줄 윗부분에는 사각형 유곽과 보살을 교대로 배치했고 아랫부분에는 강희맹이 짓고 정난종이 글씨쓴 장문이 새겨져 있다. 글에는 종을 만들게 된 연유와 제작에 관계된 사람이름이 열거되어 있어, 대대적인 공사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종 입구 위쪽으로 넓은 띠가 있는데 그 안에는 당시 유행하던 파도치는 모양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고려시대 비해 종 입구가 넓어진 형태나 몸통에 있는 가로띠와 조각수법 들은 조선시대 나타난 새로운 특징임을 잘 나타낸다.

 

 

봉선사괘불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65)

 

남양주시 봉선사에 있는 조선시대 대형불화. 보기드문 종이그림으로 길이 7.5m, 4.58m이다. 괘불이란 야외법회 때 주로 사용하는 걸개그림을 이른다. 봉선사괘불은 1735(영조 11)에 숙종의 후궁이던 영빈김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상궁 이성애가 발원하여 그린 것이다.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 노사나불, 오른쪽 석가불의 삼신불이 대중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그려놓았는데, 좌우쪽 부처님을 앞쪽에 배치하여 원근감을 살렸다. 가운데 비로자나불은 양 어깨가 넓은 신체에 원만한 얼굴을 하고, 가슴에 모은 두 손은 <중생과 부처가 하나>라는 뜻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몸에는 흑색 바탕에 꽃무늬 장식을 한 황토색 법의를 걸쳤는데, 끝자락을 흩날리는 생동감을 준다.

왼쪽 노사나불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어깨부분에서 펼쳐 설법하시는 모습을 나타내며 가슴에는 붉은 구슬을 장식하였다. 몸에는 역시 황토색 법의를 걸치고 있다. 오른쪽 석가불은 원만한 얼굴에, 머리 중앙에 반달 모양 계주를 갖춘 육계를 하고 있다. 세 부처님 모두 머리윤곽을 따라 불꽃무늬를 크게 두르고, 그 위로 상서로운 구름이 감돌아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체구성은 화폭 중간에서 V자로 구분지어 윗부분에는 세 부처님이 대중의 시선을 압도하도록 크게 배치하였고, 하단 양쪽에는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비롯해 6대보살과 십대제자 등을 두어 설법을 경청하는 대중들을 그렸다.

전체적으로 등장인물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구사된 필선이 매우 힘차고 생동감이 있으며, 17세기 유행했던 군집도 형식을 본받으면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사실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그린이 각총은 18세기 경기지역 대표적인 화승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봉선사홈페이지, 코리아템플, 문화재청 문화재찾기, 대한불교조계종 사찰검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봉선사홈페이지